몰도바에서 20일(현지시간) 실시된 유럽연합(EU) 가입 찬반 국민투표에서 찬성표가 과반을 겨우 넘겼다. EU 가입을 위한 내부 정당성을 가까스로 확보한 것이다. 같은 날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는 친(親)서방 성향의 집권 행동과연대당(RAS) 소속 마이아 산두 현 대통령이 득표율 1위를 차지했지만 과반 득표에는 실패하며 친러시아 성향 사회주의당 소속 후보 알렉산드르 스토야노글로 전 검찰총장과 결선 투표(다음달 3일)를 치르게 됐다.
21일 몰도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몰도바 통신사 몰드프레스 등에 따르면 '몰도바 EU 가입을 위한 헌법 개정을 지지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전날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찬성은 50.39%, 반대는 49.61%로 집계됐다(개표율 99.41%). 이에 따라 헌법에 'EU 가입을 몰도바 전략적 목표로 설정한다'는 내용을 추가하는 작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몰도바는 2022년 6월 우크라이나와 함께 EU 가입 후보국 지위를 획득했고, 지난해 12월 EU와 가입 협상을 개시하는 데 합의했다. 투표 결과에 따라 EU와 몰도바 간 협상이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가결 여부는 곧 국민적 지지도를 뜻하는 것인 만큼 협상의 추진력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가까스로 투표가 가결되기는 했지만 '찬성표가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라는 기존 예측에서는 크게 벗어났다. 투표 전 발표된 CBS-AXA 여론조사에서 국민 63%가 EU 가입에 찬성한 바 있다. 이러한 차이를 두고 정부는 '러시아가 선거에 개입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폈다. 산두 대통령은 개표가 약 90% 진행된 시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 국가의 이익에 적대적인 외국 세력과 협력하는 범죄 집단들이 수백만 유로의 돈과 거짓 선전 등을 이용해 우리 국가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전례 없는 공격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몰도바 경찰은 이달 초 친러시아 단체가 몰도바 국민 13만여 명에게 금품 살포를 시도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몰도바 인구는 약 250만 명이다.
예상 대비 낮은 찬성 표는 찬성표 독려를 위한 EU의 지원 사격이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 10일 몰도바를 찾아 '향후 3년 간 18억 유로(약 2조6,912억 원) 지원' 등을 발표한 바 있다. 몰도바는 러시아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국인 루마니아 사이에 있어 EU를 비롯한 서방에 지정학적 중요도가 큰 지역이다. 특히 몰도바 동부 13%를 차지하는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친러 세력이 자치하는 지역이라 러시아가 친러 지역 보호를 명분으로 몰도바를 공격할 수 있다는 전망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다음달 열리는 대선 결선 투표에서는 약 41% 득표율로 1위를 차지한 산두 대통령과 26% 득표율로 2위에 오른 스토야노글로 전 총장이 맞대결을 치르게 됐다. 선거 직전 여론조사에서 산두 대통령은 36.1% 지지율을, 스토야노글로 전 총장은 10.1% 지지율을 보였으나, 실제 투표에서는 스토야노글로 전 총장이 크게 선전한 것이다.
이번 선거에는 총 11명의 후보가 나왔으나 친서방과 친러시아 노선이 극명하게 대결하며 친러 진영의 대표 인사인 스토야노글로 전 총장에게 표심이 집중된 것으로 보인다. 스토야노글로 전 총장은 집권 시 'EU, 러시아, 미국, 중국 등과 균형 잡힌 외교 정책을 펼치겠다'고 강조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