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1일 81분 동안 대면했다. 하지만 정국의 뇌관인 ‘김건희 여사 리스크’를 풀어낼 접점은 찾지 못했다. 한 대표는 공언한 대로 김 여사의 대외활동 중단을 포함한 ‘3대 요구’를 전달했다. 반면 대통령실은 전례 없이 브리핑을 취소하며 윤 대통령의 반응을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사실상 ‘빈손' 만남에 그치면서 당정관계 악화를 넘어 여권 전체가 공멸로 치닫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이날 용산 대통령실 청사 앞 야외정원인 파인그라스에서 의제에 제한을 두지 않고 면담을 가졌다. 자리에는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유일하게 배석했다. 앞서 두 사람은 대통령실 참모들과 10분간 산책하며 분위기를 누그러뜨렸지만 거기까지였다.
면담 이후 양측 모두 생경한 반응을 보였다. 한 대표는 김 여사와 관련 △대통령실 인적 쇄신 △대외활동 중단 △의혹사항에 대한 설명 및 해소 3가지를 윤 대통령에게 건의했다고 박정하 당대표 비서실장이 전했다. 박 실장은 “한 대표는 나빠지고 있는 민심과 여론의 상황, 이에 따른 과감한 변화와 쇄신 필요성을 말했다”며 “(3대 요구 외에) 특별감찰관 임명 진행 필요성, 여야의정 협의체의 조속한 출범 필요성을 말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 대표 측은 이에 대한 윤 대통령의 반응이나 입장에 대해선 함구했다. 박 실장은 “(한 대표로부터) 전달받은 바 없다”며 “대통령실에 취재해 달라”고만 했다.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말을 많이 했지만 어떤 내용이라고 전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 대표의 각종 요구에 제대로 답을 하지 않고 회피한 것으로 비치는 대목이다.
대통령실은 아예 입을 닫았다. 그 흔한 서면브리핑도 없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면담에서 대화 주제 제한 없이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안다"며 “헌정 유린을 막아내고 정부의 성공을 위해 당정이 하나가 되기로 의견을 같이했다"고 강조했다. 한 대표 측 설명과는 동떨어진 내용이다.
한 대표는 윤 대통령에게 김 여사와 관련한 3대 요구 외에도 왜 이 사안이 문제인지 민심을 상세하게 전달했다고 한다. 특별감찰관 임명에 대해서는 그간 여야 대치상황을 불발의 원인으로 삼았다면 이제는 당정이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이 같은 문제제기와 질문에 "구체적으로 확인된 의혹은 없지 않느냐"는 취지로 적극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한 대표는 윤 대통령의 입장이 자신이 강조해온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당정 지지율이 동시에 하락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당정 갈등을 봉합하고 국정 동력을 확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이날 면담은 성과 없이 끝난 모양새다. 이에 여권에서는 향후 당정 관계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한 대표의 3대 요구에 대해 윤 대통령이 제대로 호응하지 않으면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또다시 국회를 통과할 ‘김건희 특검법’이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국회 표결과정에서 친한동훈계를 중심으로 '이탈표'가 늘어나 야당 주장에 가세하는 건 최악의 시나리오다.
다만 윤 대통령이 민심과 여론에 대한 입장을 조만간 밝히는 자리를 마련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다른 여권 관계자는 "한 대표가 3대 요구를 면전에서 제기했다고 해서 대통령이 바로 문제를 풀어 제출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으냐"면서 "한 대표에게 전달받은 민심과 관련해 복합적인 입장을 국민들과 나눌 시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