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회동이 뚜렷한 성과 없이 끝나자 친한동훈(친한)계는 "예상했던 일"이라면서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김건희 여사 의혹으로 수세에 몰린 정국 상황을 선제적으로 해소하고, 다음 달 예정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잇따른 1심 판결에 국면 전환을 시도해 보겠다는 구상이 뒤엉키면서다. "국민 눈높이에 맞추겠다"는 한 대표의 요구를 윤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은 만큼, 민심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는 당과 김 여사 리스크에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대통령실 간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질 전망이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 간 면담 분위기는 이날 회동 직후 친한계 인사들 반응을 통해서 확인됐다. 지도부의 한 친한계 인사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김 여사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얘기를 당에서 꺼낸 지 벌써 한 달도 넘었다"면서 "고민할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대통령실에서 한 대표에게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은 것을 보면, 결국 당에서 하는 조언을 전혀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회동 직후 한 대표가 직접 브리핑을 하지 않고 박정하 당대표 비서실장 기자회견으로 갈음한 것도 '무언의 불만의 메시지'란 해석이 나왔다. 이날 면담 직전까지 당 내부에서는 "한 대표가 직접 회동 결과를 브리핑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이에 대해 당 지도부의 한 관계자는 "뚜렷한 결론이 없으니 한 대표가 언론에 할 말이 없었던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소장파 의원들 불만도 감지됐다. 비영남권의 한 초선 의원은 본보 통화에서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메시지가 전혀 없었다면 안 만나느니만 못한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고, 또 다른 초선 의원도 "대통령실이 김 여사 문제를 매듭짓지 않아 매우 아쉽다"고 유감을 표했다.
다만 친한계 일부에서는 "좀 더 기다려 보자"는 반응도 있었다. 6선 조경태 의원은 본보 통화에서 "이제 용산에서 어떻게 나올지 결과를 좀 지켜본 뒤 당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3선 송석준 의원도 "천천히 변화가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친한계의 이 같은 반응은 이날 빈손 회동이 결국 윤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만 강화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실제 한 대표는 이날 성과를 끌어내진 못했지만, 김 여사 의혹과 관련한 3대 요구와 나빠지고 있는 민심, 여론상황에 따른 과감한 변화와 쇄신 등 지난달 지도부 만찬 때와 달리 할 수 있는 얘기는 대부분 전달했다는 평가다. 시간이 흐를수록 김 여사 의혹에 윤 대통령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 당심을 비롯해 보수층 여론 전체가 한 대표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는 게 친한계 생각이다. 당 지도부 인사는 "앞으로 한 대표가 좀 더 강하게 나갈 수 있는 명분이 쌓일 것"이라며 "한 대표는 오는 30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 전후로 김 여사 문제와 관련한 구체적인 대응책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여론이 기운다고 해도 한 대표가 추가로 쓸 수 있는 카드는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윤 대통령을 움직일 수 있는 지렛대는 야당이 추진하는 김 여사·채 상병 특별검사법에 대한 공조다. 실제 한 대표가 이날 윤 대통령과의 회동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제안한 여야 대표 회담을 수용한 것도 "대통령실의 태도 변화를 이끌기 위해 야권과 공조 가능성도 열어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다만 특검은 '탄핵→정권 교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당정이 공멸로 갈 수 있는 리스크를 안고 있다.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당 안팎에서는 일단 한 대표가 민주당이 발의한 특검에 선을 그으면서 "특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인적 쇄신 등 대통령실의 근본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식의 압박 전술을 이어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