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의 히든 카드는 주주 마음 얻을까...'두산에너빌리티서 밥캣 떼어낸다'는 그대로

입력
2024.10.22 06:00
17면
두산에너빌리티 100주당 받는 로보틱스 주식 한 주 늘어
"사업상 시너지에 꼭"…장 마감 후 발표, 시장 반응 주목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을 합병하겠다는 지배 구조 재편안을 발표했다가 주주 반발과 금융 당국 압박으로 포기한 두산그룹이 대안을 내놓았다. 알짜 회사로 꼽히는 두산밥캣을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떼어내 두산로보틱스에 준다는 핵심 내용은 사실상 그대로다. 대신 두산에너빌리티 주주가 주식 100주당 받을 수 있는 두산로보틱스 주식은 기존보다 한 주 늘었다.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는 21일 각각 이사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사업구조 재편안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이 안에 따르면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를 포괄적 주식 교환으로 합병하는 기존 방식은 포기했다. 하지만 두산에너빌리티를 두산밥캣 지분을 소유한 신설 법인으로 인적 분할한 뒤 이 법인을 두산로보틱스의 자회사로 두는 안으로 바꿨다. 알맹이는 똑같은데 포장 방식만 바꾼 셈이다.

이는 기존 합병안에 비교해 주주가치 보호에 더 효과가 크다는 게 두산 측 설명이다. 이 새 법인과 두산로보틱스의 합병 비율은 기존 1대 0.031에서 1대 0.043으로 오르게 된다. 이 경우 두산에너빌리티 주식 100주를 보유한 주주가 받을 수 있는 두산로보틱스 주식은 기존 3.1주에서 4.3주로 늘어난다. 기존보다 한 주 늘어나는 셈이다.

두산밥캣은 매출 9조7,000억 원, 영업이익 1조3,000억 원대의 알짜 회사다. 반면 두산로보틱스는 매출 530억 원에 영업이익에서 192억 원 적자를 봤다. 이 때문에 기존 합병안이 나오자마자 주주들이 손해를 본다며 크게 반발했다.

그럼에도 방식을 바꿔 이같이 사업 구조를 재편하는 게 사업상 시너지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게 두산 측 설명이다. 소형 건설기계 제조사인 두산밥캣을 원전 발전 기기 제조사인 두산에너빌리티보다는 로봇 제조사인 두산로보틱스와 묶어야 사업상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사업 기회가 커지고 있는 두산에너빌리티에도 필요하다고 두산은 강조한다. 이번 재편을 마치면 두산에너빌리티가 안고 있는 두산밥캣의 차입금 7,000억 원을 두산로보틱스로 넘기는 등 1조 원 가까이 투자에 쓸 수 있는 실탄을 확보하게 된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두산밥캣을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떼어낸다는 뼈대는 그대로여서 시장 반응이 주목된다.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밥캣, 두산로보틱스 등 3사 최고 경영진은 이날 장 이후인 오후 4시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어 재편안을 설명했다. 박상현 두산에너빌리티 사장은 "주주들에게 최대한 많은 주식이 지급되는 방향으로 분할 합병 비율을 변경했다"며 "이번 재편으로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로보틱스 양 사의 성장이 빨라져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은 가치가 더욱 높아질 양 사 주식을 동시에 보유함으로써 추가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장 상황 따라 두산로보틱스·밥캣 합병 재추진 검토 가능"


이날 간담회 후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두산 측은 향후 폐기한 사업구조 재편안의 주요 내용을 재추진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두산로보틱스와 밥캣의 합병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스캇 박 두산밥캣 부회장은 "향후 1년 간은 힘들 것으로 생각한다"면서도 "이후 주주 및 시장 의견을 청취하고 시너지 상황을 고려해 추진 여부를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앞서 두산그룹의 사업구조 재편계획이 소액주주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일자 금융감독원은 두 차례에 걸쳐 두산 측에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한 바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두산의 정정신고서에 부족함이 있다면 횟수 제한 없이 정정 요구를 하겠다"고 압박하기도 했다. 때문에 금융당국이 이번 재편안에 제동을 걸 가능성도 남아 있다.

이에 박상현 두산에너빌리티 사장은 "승인여부는 금감원에서 최종 의사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실무자들은 계속 소통하며 당국에서 요구하는 바를 반영했다"고 말했다. 그는 "부족한 점이 있었다면 반성하고, 앞으로 이해관계자(의 요구)를 두루 반영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청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