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1일 약 1시간 22분 동안 만났다. 잔디를 함께 걸었고 차도 마셨다. 하지만 회동 장면은 생경했다.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아 비교적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 이야기를 나눈 올 1월과 달리, 마치 남북회담하듯 길게 놓인 탁자를 사이에 두고 다소 경직된 모양새로 마주보며 현안을 논의했다. 이후 여당은 한 대표의 발언만 브리핑하며 불만을 드러냈고, 대통령실은 아예 브리핑을 하지 않았다. 한 대표의 독대 요청 이후 한 달 만에 윤 대통령과 어렵사리 만났지만 양측의 '신뢰'는 여전히 부족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4시 54분쯤 노타이 차림으로 용산 대통령실 파인그라스에 도착한 한 대표를 맞이했다. 윤 대통령의 외교 일정으로 인해 당초 예정시간보다 20여 분 늦게 시작됐다. 둘은 악수를 나눈 뒤 어린이정원 인근까지 10여 분간 산책했다. 김건희 여사 측근으로 분류되는 이기정 대통령실 의전비서관 등 참모들도 동행했다.
두 사람은 산책하면서 제79주년 경찰의 날 행사에서 올해의 경찰 영웅으로 선정된 고 이재현 경장 등을 언급하며 대화를 나눴다. 윤 대통령은 "경찰 영웅은 몇십 년이 지나도 잊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 것"이라며 "오늘 네 분을 현양하는데 두 분은 1995년 부여 대간첩 (작전 수행 과정에서 순직했다)"이라고 말했다. 이날 예정보다 늦은 것에 대해서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과 전화 통화를 했다"며 양해를 구했다.
이후 면담은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포함해 2+1 형식으로 진행됐다. 윤 대통령은 한 대표와 마주 보고 앉았고, 한 대표 옆에 정 실장이 배석했다. 껄끄러운 상대와 회담을 하거나 윤 대통령이 참모진 회의를 주재하는 모양새였다. 한 대표 옆에는 미리 준비해간 빨간색 파일이 놓여 있었다. 파일에는 윤 대통령에게 건의할 내용이 담겨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대표는 면담에서 △민심 악화에 따른 변화·쇄신 필요성 △김건희 여사 관련 3대 요구사항 △여야의정 협의체 조속 출범 등을 제안했다.
식사 없이 차담으로 진행된 면담에서 윤 대통령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한 대표에게는 윤 대통령이 "한 대표가 좋아하는 제로콜라로 준비해달라"고 직접 지시했다고 한다. 테이블에는 과일도 올랐다. 당초 분위기에 따라 만찬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지만 해가 질 때쯤 면담은 끝났다. 윤 대통령은 앞서 예정된 저녁 약속이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