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한 병원 주차장에 세워진 난민 텐트촌에서 19세 청년이 산 채로 불에 타 죽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전 세계에서 공분이 일고 있다. 병원만큼은 안전할 것으로 믿고 몸을 맡겼던 청년은 이스라엘군 공습 후 화마에 휩싸인 채 무기력하게 팔을 흔들며 숨져갔다. 유엔 주재 미국대사마저 “우리가 본 것을 설명할 말이 없다”며 이스라엘을 비판했다.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의사를 꿈꾸던 팔레스타인 대학생 샤반 알달루가 지난 14일 가자지구 중부 데이르 알발라의 알아크사 순교자 병원 주차장에서 불에 타 숨졌다. 알달루가 불길에 휩싸인 모습은 난민촌 목격자에 의해 생생하게 영상으로 기록됐고, 이 영상이 온라인에 공개되면서 전 세계는 그가 숨져가는 모습을 속절없이 지켜봐야 했다.
알달루를 삼킨 화재는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지휘센터가 병원 근처에서 운영된다는 이유로 공습을 가하면서 발생했다. 이 공격으로만 알달루와 그의 어머니 등 최소 4명이 숨지고 40명이 부상했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의료시설을 공격해선 안 된다'는 국제법을 지킬 것으로 믿고 병원 옆에 텐트를 쳤다 화를 당했다.
알달루의 어린 동생들을 안전한 장소로 대피시킨 뒤 아버지가 달려왔으나 손을 쓸 수 없었다. 큰 화상을 입은 알달루의 아버지는 “아들아, 나를 용서해 다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NYT에 말했다. 그는 “알달루는 엄마를 가장 사랑했다”며 “우리는 알달루와 엄마를 서로의 품에 묻어줬다”고 아랍권 알자지라 방송에 전했다. 공습 당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던 알달루의 막내 동생도 화상 후유증으로 인해 결국 형의 곁으로 떠났다.
알달루는 숨지기 열흘 전 26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내 이슬람 사원 공격에서도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이스라엘은 당시에도 하마스 지휘센터를 표적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알달루의 고모는 “(당시 공습으로 인한) 파편을 제거하고 꿰맨 자리의 실밥도 아직 풀지 못했다”며 흐느꼈다.
알달루는 20번째 생일을 하루 앞두고 숨졌다. 전쟁이 터지기 전 가자시티 알하즈아르대에서 공부했던 그는 해외에서 소프트웨어 분야 박사 학위를 딸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전쟁은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놨다. 그는 지난해 10월 가자 전쟁 발발 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전쟁을 멈춰 달라는 호소문과 피란 현장을 담은 영상을 올리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다 전쟁이 길어지고 영양실조와 부상에 시달리면서 가자지구 탈출을 계획했다. 자신이 먼저 빠져나간 다음 부모와 형제자매를 탈출시킬 작정이었다. 온라인 모금 사이트를 통해 2만 달러(약 2,700만 원)를 모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지난 5월 가자에서 이집트로 통하는 라파검문소를 폐쇄하면서 탈출의 꿈은 허사가 됐다. 그는 이후에도 좌절하지 않았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연설을 분석하면서 가족들에게 "모든 게 잘될 것"이라고 용기를 불어넣었다고 한다.
알달루의 마지막 몸부림이 담긴 영상이 공개되자 국제사회에서는 이스라엘의 전쟁 수행 방식에 대한 비난이 들끓고 있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는 16일 성명을 통해 “(영상에서) 우리가 본 것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없다"며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병원 근처에서 작전을 수행했더라도 민간인 사상을 피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처를 할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 관계자는 알달루 영상을 본 뒤 “이스라엘 정부에 우리 우려를 분명히 전달했다”고 튀르키예 아나돌루통신에 말했다.
NYT는 “알달루는 가자에서 탈출을 꿈꿨지만 세상은 그가 산 채로 불타오르는 것을 지켜봤다”며 “(알달루는) 국제사회가 방관하는 가운데 봉쇄된 지역에 갇힌, 가자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상징이 됐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