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겹이 쌓은 4단 케이지에 악취 가득… 불법 번식장서 개 600마리 구조

입력
2024.10.21 16:30
루시의 친구들, 20년 된 불법 번식장 적발
동물보호법 위반은 한 번도 적발 안 돼



"뚫려 있는 공간인 데도 악취가 진동하고 눈을 뜰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인지 눈이 안 좋은 개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이른바 돈 되는 품종들은 다 키우고 있었습니다."

17일 부산 강서구 대저동 서낙동강 인근, 22개 동물단체 연합인 루시의 친구들불법 운영되던 개 번식장에서 600여 마리를 구조했다고 21일 밝혔다.

루시의 친구들에 따르면 해당 번식업자는 20년 넘게 번식장을 불법으로 운영해오다 2018년 생산업이 허가제로 전환되자 인근 경남 김해시에서 소규모 번식장을 운영하며 생산업 허가를 냈다. 업자는 김해에 있는 경매장을 통해 허가받은 번식장뿐 아니라 허가 규모의 30배가 넘는 불법 번식장에서 기른 개들도 내다판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번식장은 4단까지 케이지를 쌓아 올리는 등 시설과 인력 기준 모두 위하고 있었다. 현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2018년 3월 이전 동물생산업 신고를 한 경우 2단까지만 케이지를 쌓을 수 있고, 50마리당 1인의 인력을 배치해야 한다.

문제는 강서구청이 해당 번식장을 불법 건축물로 보고 2020년 이행강제금을 부과한 적이 있을 뿐 동물보호법상 반려동물 번식업 규정과 관련해선 단 한 번도 고발이나 행정조치가 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단체들은 현장에서 불법 안락사가 이뤄졌음을 추정하게 하는 마취제와 안락사 약제까지 발견됨에 따라 동물보호법, 수의사법, 마약류관리법 등의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번식장 내부는 처참했다. 루시의친구들 측은 "끝없이 이어지는 미로와도 같은 번식장에 개들이 구석구석에 갇혀 있어 찾아내기 어려울 정도였다"며 "치아질환은 물론 안구질환, 피부병, 탈장, 실명, 기립 불능 상태의 개들이 다수 발견됐다"고 상황을 전했다.

단체들은 부산시와 강서구가 피학대견을 위한 어떤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심인섭 라이프 대표는 "동물단체가 개들을 구조해도 지자체가 이들을 보호할 공간이나 예산이 없어 민간에서 다 떠맡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해당 번식장은 건축법을 위반한 사실이 밝혀진 만큼 내부적으로 해당 내용이 공유됐다면 동물보호법 위반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단체들은 불법 번식장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결국 경매장을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설사 동물을 매매하더라도 양심적으로 소수의 종모견을 키우는 브리더를 통해 직접 소비할 수 있도록 법 제도를 개선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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