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철금속 분야 세계 1위 기업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둘러싼 법정 분쟁에서, 법원이 재차 영풍 측 주장을 물리쳤다. 법원이 영풍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함에 따라, 고려아연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계속 자사주를 매입할 수 있게 됐다.
2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수석부장 김상훈)는 영풍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대표이사) 등을 상대로 제기한 자사주 공개매수 중지 가처분 신청을 이날 기각했다. 공개매수란 주식의 가격, 수량 등 조건을 미리 제시하고 일정 기간 불특정 다수로부터 주식을 공개적으로 매입하는 것이다.
앞서 영풍은 지난달 19일 고려아연을 상대로 자사주 취득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고려아연에 대한 공개매수 기간(9월 13일~10월 4일) 고려아연이 자사주를 매입할 수 없게 해달라는 취지다. 법원은 고려아연이 자사주를 사들일 자격이 된다고 판단, 2일 신청을 기각했다.
영풍은 기각 당일 공개매수 중지 가처분 신청을 또 다시 제기했다. 고려아연이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주식을 매수하려는 것은 최 회장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어서 '배임'이라는 주장이 추가됐다. 이에 고려아연은 "외부 세력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에 대한 대응 차원"이라고 반박했다.
법원은 한 차례 심문을 거쳐 다시 한 번 고려아연 손을 들어줬다. 애초 영풍이 매수가격을 주당 66만 원에서 83만 원까지 끌어올린 탓에 현재로썬 적정주가를 산정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취지다. 고려아연이 매입 자사주를 소각하기로 한 만큼, 배임행위로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상법 및 자본시장법에 자기주식 취득 목적에 관한 제한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고려아연이 관련법상 각종 절차들을 준수한 이상, 이 사건 자기주식 공개매수의 목적에 경영권 방어가 포함돼 있다고 하더라도 자기주식 공개매수가 바로 위법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고려아연의 최대 주주인 영풍은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의 특수목적법인(SPC) 한국기업투자홀딩스와 함께 지난달 13일 고려아연에 대한 안정적 경영권 확보를 위한 공개매수를 진행한다고 공시했다. 이에 맞서 고려아연은 3조 원이 넘는 자사주 취득과 대항 공개 매수를 예고했다.
영풍그룹은 1949년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설립했다. 이후 고려아연 계열사는 최씨 일가가, 전자 계열사는 장씨 일가가 맡는 분리 경영을 했다. 그러나 두 집안의 우정은 2022년 이후로 금이 갔고, 최씨 일가는 영풍그룹 산하의 고려아연을 계열분리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현재는 장씨 집안과 최씨 집안이 고려아연 경영권 확보를 위해 지분 싸움을 벌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