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레바논의 친(親)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돈줄 파괴에 나섰다. 지금까지 헤즈볼라 무기고와 정보 시설 등 군사 거점에 대한 공세를 강화해 왔다면, 이번엔 헤즈볼라의 자금줄을 끊어 존립을 흔들고 재건을 막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스라엘군이 20일(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교외 지역에 있는 '알카르드 알하산(AQAH)' 지부 세 곳을 공습했다고 레바논 국영 NNA통신과 타임스오브이스라엘 등은 전했다. 이스라엘은 AQAH를 헤즈볼라가 서방의 제재를 피해 테러 자금을 조달하는 창구로 보고 있다. 미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공습 의도를 "헤즈볼라의 경제 거점을 공격해 이 단체의 전쟁 기능과 향후 재무장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이스라엘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아랍어로 '자비로운 대출'을 뜻하는 AQAH는 1982년 설립돼 비영리 금융기관 형태를 갖추고 있다. 헤즈볼라는 레바논 전역에 31개 AQAH 지부를 두고 사실상 이 기관을 은행처럼 운영 중이다. 레바논 국민들에게 대출도 내준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시아파 신도들을 상대로 무이자 대출을 제공하는데, 보증인을 세우거나 금괴 등을 담보로 받는다. 앞서 헤즈볼라에 따르면 AQAH는 설립 이래 레바논 국민 약 180만 명에게 37억 달러(약 5조 원)가량의 대출을 제공했다. 2019년 본격화한 레바논 경제 위기와 그로 인한 은행 부실 사태와 맞물려 AQAH 이용 고객도 늘었다고 한다.
미국과 이스라엘 등 국제사회는 AQAH가 궁극적으로 이란의 군사 지원금이 오가는 헤즈볼라의 공식 은행 창구 역할을 한다고 보고 있다. 헤즈볼라 대원들의 급여도 AQAH를 통해 제공된다고 한다. AQAH는 국제 송금·결제망(SWIFT·스위프트)에 등록되지 않은 채 운영되고 있다. 이에 미 재무부는 2007년 AQAH가 테러 집단의 금융 활동을 관리한다며 제재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이런 탓에 이란은 시리아를 통해 AQAH에 현금을 직접 전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레바논은 2019년 경제 위기 이후 코로나19 대유행과 2020년 베이루트 대폭발 등을 거치며 경제가 회복 불능 상태로 빠진 지 오래다. 현지 화폐인 레바논 파운드화 가치는 2019년 10월 이후 현재까지 98% 넘게 폭락한 상태다. 미 싱크탱크 허드슨 연구소 데이비드 애셔 수석 연구원은 "현금 기반 조직인 AQAH가 공습을 받을 경우 현금은 휴지 조각이 될 것"이라며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AQAH를 겨눈 이스라엘의 이번 공습이 헤즈볼라는 물론 레바논 국민들에도 강도 높은 압박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