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님들 미쳤다' 싶을 정도로 '한국의 미'란 원래 화려하고 고급지죠"

입력
2024.10.22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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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책 '골동골동한 나날' 펴낸 박영빈씨

골동품 수집가 박영빈(31)씨의 방에선 여러 시대와 나라가 교차한다. 눈길 닿는 곳마다 각기 다른 나라에서 다른 시절에 사용한 손때 묻은 물건들이 놓여 있다. 중국 원나라 때의 백자 향로, 중국 민국 시기의 대나무 필통, 조선 말기 나무 향합(향을 보관하는 합), 고려시대의 다완(말차를 마실 때의 사발)···. 박씨는 "주로 차 도구, 향, 불교 유물, 한복과 관련된 복식 및 생활 민속품을 모은다"며 "지금까지 모은 골동품이 대략 70~80점"이라고 말했다. 골동품의 기준은 만든 지 100년 이상이 된 물건. 50년 이하는 '신작'으로 분류되는 게 골동의 세계다.

값싼 새 상품이 클릭 한 번에 총알처럼 배송되는 시대에 90년대생 청년은 어쩌다 값비싼 헌 물건에 빠졌을까. 최근 '골동골동한 나날'이란 책을 낸 박씨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전 소장자가 누구고, 어떻게 여기로 왔는지와 같은 골동품에 깃든 스토리가 좋다"며 "거기에 제 이야기를 하나 더 얹을 수 있다는 게 골동품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더듬어 보면 배를 탔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세계 각국에서 사온 기념품을 갖고 놀던 어린 시절부터 골동벽의 기질이 있었다. 그는 책을 쓴 동기에 대해 "골동품 업계는 이제 다 끝났다고 말하는 선배 수집가들에게 아직도 전통문화나 옛것을 좋아하는 젊은 수집가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수집가는 많아도 박씨처럼 "생활 속에서 실사용할 수 없으면 들이지 않는다"는 철칙을 지키는 이는 드물다. 그의 귀한 물건들은 모두 '장식장' 밖으로 나와 있다. 수시로 고려청자에 차를 따라 마시고, 원나라 때 백자 향로에 향을 피우고, 일제강점기 때 촛대에 초를 꽂아 불을 밝힌다. 한복도 자주 입고 다닌다. 갓이나 애체(옛 안경)도 종종 쓴다. 박씨는 "'미의 완성자는 사용자'라는 말을 좋아한다"며 "먼지가 쌓이게 두는 게 아니라 내가 사용함으로써 이것을 완성시키고, 앞서 이것을 소장했던 사람들과 그 역사를 느낀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실생활 사용'이 원칙이다 보니, 수집품을 종종 물건의 본래 용도가 아닌 다른 용도로 쓰는 전용(轉用)도 한다. 예를 들면 벼루를 다관(찻주전자) 받침으로 사용하거나 향로를 꽃꽂이용 수반으로 사용하는 식이다. 금이 간 접시, 낡은 갓도 수리해서 다시 쓴다.


박씨가 꼽는 한국 미술의 특징은 '꾸민 듯 안 꾸민 듯'이란 뜻의 '꾸안꾸'. 심플해 보이지만, 실상은 안 보이는 곳의 디테일까지 신경 쓴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나씩 뜯어보면 '조상님들 미쳤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고급 재료나 고급 기술을 정말 아낌없이 쓰는 경우가 많거든요. 옷장에도 '먹감나무'를 쓴 경우가 있고요. 이 나무를 찾기도 힘든데, 나무 문양을 짝을 다 맞춰서 가구를 만들었어요. 또 머리에 쓴 갓이 뒤로 안 넘어가게 하는 풍잠이란 장신구가 있는데, 갓 안에 있으면 거의 안 보이거든요. 그런데 이걸 상아나 보석, 호박이나 대모(거북이 등껍질)처럼 현대에도 귀한 재료를 써서 만들었어요. 골동하는 분들 사이에서 '이러니깐 나라가 망했지' 소리가 나오는 거죠."

MZ세대가 최근 미술 시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한국 고미술은 아직까지 소외돼 있거나 '어려운 분야'로 취급된다. 덕후에게 "취미를 공유할 사람이 없다"는 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그가 골동의 대중화를 바라는 이유다. 그는 "한국 미술은 단아, 소박, 검소하다고 표현할 수 없다"며 "우리 고미술에도 화려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젊은 세대들도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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