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를 선언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11월 미 대선과 관련해 현금을 쏟아붓기로 했다. 매일 추첨을 통해 뽑힌 유권자에게 100만 달러(약 13억7,000만 원)씩을 주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트럼프 지지'를 조건으로 내걸지는 않았지만, 자칫 연방범죄에 해당하는 매표 행위로 비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품 살포'(불법)와 '투표 독려'(합법) 사이의 모호한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셈이다.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머스크는 자신이 만든 정치자금 모금 조직인 '아메리카팩'이 진행하는 청원에 참여하는 펜실베이니아주(州) 유권자 가운데 한 명을 날마다 무작위로 추첨해 100만 달러를 주기로 약속했다. 해당 유권자 입장에선 '로또 당첨'과도 같은 행운을 만나는 격이다.
당초 아메리카팩은 7개 경합주(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미시간 조지아 애리조나 노스캐롤라이나 네바다)에서 보수 의제인 수정헌법 제1조(표현의 자유 보장)와 2조(총기 소지 권리 보장)에 대한 지지 서약 청원을 벌여 왔다. 동참자를 구해 오면 한 명당 추천료 47달러(약 6만3,000원)를 주기로 했다. 이후 머스크는 펜실베이니아에 한해 추천료를 100달러(약 13만7,000원)까지 올리며 참여를 독려했다.
그러다 이제는 아예 무작위 추첨을 통해 복권 당첨금처럼 거액을 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경합주 중에서도 가장 많은 선거인단 19명이 걸린 펜실베이니아주는 민주·공화 양당 모두에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최대 격전지라는 사실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머스크의 '100만 달러 지급' 계획에 대한 질문을 받자 "그는 나의 친구"라며 치켜세웠다.
문제는 위법 소지다. 미국 선거법상 유권자 등록이나 투표를 대가로 금품을 주고받는 것은 징역형에 처해지는 연방 범죄다. 현금뿐 아니라 주류 등 물건, 복지 혜택 약속, 추첨 기회 제공도 포괄적으로 금지된다. 물론 청원 참여와 관련한 금전 지급 자체는 처벌 규정이 없는데, 머스크는 '유권자 등록'이라는 조건을 내걸었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선거자금 관련 전문 변호사인 브렌던 피셔는 AP통신에 "단순히 청원에 참여하는 '펜실베이니아 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추첨한다면 합법성에 대한 의심이 거의 없었을 것"이라며 "그러나 유권자 등록이라는 조건하에 돈을 주는 것은 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단순한 '투표 독려'로만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민주당 소속 조시 셔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는 이날 NBC방송에 "법 집행 기관이 (위법 여부를) 살펴볼 만한 문제"라고 말했다.
트럼프·머스크의 밀착이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는 시각도 있다. 앞서 트럼프는 재집권 시 각종 규제 철폐 등을 위한 정부효율위원회를 신설하고, 머스크를 수장에 앉히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공언했다. 머스크의 현금 살포에 대한 '보상'을 약속한 셈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머스크는 미국 정부와 이해관계로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탓에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어떤 일을 맡든 '사익 추구' '이해 충돌' 등 비판을 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NYT는 머스크의 우주탐사기업 스페이스X, 테슬라 등이 최근 10년간 국방·안보·에너지·농업·운송 등 미국 연방기관들과 맺은 계약 규모가 총 154억 달러(약 21조 원)에 달한다고 전했다. 이와 동시에 머스크 소유 기업들은 안전, 환경, 고용 등 분야에서 최소 20건의 규제 위반으로 연방기관의 조사 대상이 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