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면담이 맹탕으로 끝났다. 김건희 여사 문제 해소를 위한 한 대표의 3대 요구에 대통령실은 별도의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김 여사 문제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윤 대통령의 '불통'을 재확인한 것이다. 정국 해소의 계기가 될 수 있었던 이번 면담을 스스로 걷어차면서 국민의 실망을 넘어 분노만 키운 셈이 됐다.
이날 면담의 성패는 김 여사 문제 해법 도출에 달려 있었다. 하지만 면담 종료 후 대통령실과 한 대표 측 설명에선 온도차가 확연했다. 한 대표는 김 여사의 대외활동 중단, 대통령실 인적 쇄신, 의혹 규명 절차 협조 등 3대 요구에 특별감찰관 임명 추진까지 요구했다. 여·야·의·정 협의체의 조속한 출범, 민심 수습을 위한 과감한 변화·쇄신 등도 주문했다. 대통령실은 "헌정 유린을 막아내고 정부의 성공을 위해 당정이 하나가 되기로 의견을 같이했다"는 원론적 입장만 내놓았다. 결국 약 80분간의 면담에서 각자 하고 싶은 말만 하고 헤어졌다는 방증이다. 이럴 거면 윤 대통령이 왜 한 대표를 만났는지 의아할 지경이다.
지금의 정국은 윤 대통령이 김 여사 방어에만 '올인'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 내수 침체와 의료공백 장기화, 북한의 러시아 파병과 다음 달 미 대선에 따른 안보 불안 등 대내외 환경이 녹록지 않다. 김 여사 문제 하나 해결 못 하는 여권이 산적한 현안을 풀어갈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다음 달 10일이면 윤 대통령은 임기 반환점을 맞는다. 여권의 공멸을 피하고 집권 후반기 국정 동력 확보를 위해서라도 국민 눈높이에 부합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국민 앞에 국정이 우선인지, 김 여사가 우선인지를 명확히 할 때가 됐다.
한 대표는 면담에 앞서 김 여사 문제 해결을 위한 3대 요구를 "국민이 요구하는 최소치"라고 했다. 10·16 재·보궐선거 현장에서 확인한 싸늘한 민심을 윤 대통령에게 정확히 전달하겠다는 취지였을 것이다. 대통령이 집권여당의 고언을 귓등으로 듣는다면 한 대표라도 국민 요구에 부합하는 정치적 선택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