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추운 겨울 밤 제주 감귤 비닐하우스 책임지는 ESS...누가 만들었을까요?

입력
2024.11.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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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에너지솔루션 '에이블(AVEL)' 어떻게 컸나
'지역배전망 연계형 ESS' 제주 지역 전력 공급
제주 에너지 입찰시장서 '가상발전소' 사업도
ESS, 기후, 머신러닝 전문가 영입해..인력 다양
대기업 내 벤처로 시작...모험적인 의사결정
당장 돈 버는 조직은 아니지만..."기술에 투자"
이제는 LG엔솔 에너지 서비스 총괄 조직으로
"미래 전력시장 서비스를 에이블이 선점할 것"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세화리. 어촌을 중심으로 1층짜리 민가들 사이로 감귤 농사를 짓는 비닐하우스가 군데군데 있는 곳이다. 민가와 비닐하우스 사이로 굽이진 도로를 타고 들어가면 어울리지 않는 시설 하나가 등장한다. 바로 LG에너지솔루션 '에이블(AVEL)'의 에너지저장장치(Energy Storage System, ESS)다.


전력 인프라 부족한 세화리에 등장한 'ESS'


에이블은 왜 여기를 선택했을까. 답은 세화리의 전력 사용 패턴에 있다. 세화리는 추운 겨울 밤에도 감귤 등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를 따뜻하게 하기 위해 전기가 필요한 동네다. 그런데 제주 국제공항을 중심으로 도심권인 제주시와 달리 세화리엔 야간 전력 부하를 대응할 만한 전력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다.

이 틈을 에이블이 파고들었다. ESS와 지역 배전망을 연계한 것이다. 에이블의 ESS는 ①제주도에 퍼져있는 재생에너지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를 끌어와 ②ESS에 저장해뒀다 ③세화리에서 필요할 때 배전망을 통해 전력을 공급한다. 에이블 ESS 앞에 우뚝 선 2만 2,000볼트급 전봇대가 이 역할을 맡는다. 겨울에 세화리에서 자란 감귤을 서울에서 먹을 수 있게 되는 건 에이블의 ESS가 보내준 전기로 추운 겨울 밤에 비닐하우스가 정상 작동한 덕이다.

이런 탓에 에이블 ESS의 안전은 매우 중요하다. 에이블에 최근 합류한 김지훈 책임은 "ESS 내 배터리의 열, 습도 관리는 24시간 이뤄지고 있다"며 "특히 배터리 화재에 대비한 에이블만의 소화시스템도 갖춰져 있다"고 설명했다. 에이블에는 이를 위해 LG에너지솔루션에서 ESS 운용, 안전, 개발 역할을 도맡던 베테랑 인력들이 배치돼 있다.



가상발전소 사업 속도내는 에이블


에이블은 제주도에서 '가상 발전소' 사업도 시작했다. 는 발전소 형태는 아니지만 물리적 발전소들의 정보를 통합해 전력망에 대응하는 컨트롤 시스템이다. 가상 발전소 사업은 공급량이 날씨에 따라 들쭉날쭉해 예측 가능한 전력 수요 대응이 어렵다는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발전원들이 핵심 고객이다. 전력 공급량을 최대한 정확히 예측해 지역 전력 수요에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에이블은 제주도 내 풍력, 태양광 발전소를 혼합해 87메가와트(MW) 규모의 가상발전소를 운영하고, 재생에너지 입찰시장(시범 사업)에 매일 참여하고 있다. 입찰을 위해서는 전날 오전 11시에 다음날 0시부터 자정까지 시간대 별 예상 전력 공급량을 제시해야 한다. 전력 수요보다 조금 더 공급될 때 전력망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어 입찰 때 예상 공급량을 정확하게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

에이블은 가상 발전소 예측력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후 전문가와 머신러닝 전문가를 채용한 점이 눈에 띈다. 정확한 기후 데이터를 관리, 머신러닝 모델링을 통해 재생에너지 발전원들의 정확한 공급량을 예측하기 위해서다. 머신러닝 전문가 신창호 책임은 "머신러닝은 특정 지역의 기후 데이터만 있다면 모델링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세 명으로 출발해 어느 덧 18인..."전력 시장 기술 내재화할 것"


에이블은 2022년 10월 LG엔솔의 사내독립법인(Company-in-Company, CIC)으로 출발했다. 이때 에이블에 속한 인원은 단 세 명 뿐이었다. 배터리 사업이 전기차 시장 등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수익을 안정적으로 낼 수 있는 서비스 사업에 관심을 가진 게 시작이었다. LG엔솔은 여러 서비스 사업 리스트를 검토한 뒤 태스크포스(TF)였던 '전력시장 관련 서비스 사업'을 에이블로 발전시켰다.

에이블의 식구는 황원필 대표 등 18명으로 늘었고 조직도 솔루션개발팀, 상품기획팀, 사업모델개발 파트로 다양해졌다. 지역배전망 연계형 ESS, 가상발전소 운영 등이 모두 전력 인프라 사업인 것을 고려하면 여전히 소수 정예다. 윤성한 솔루션개발팀장은 "에이블은 CIC로 출발한 조직답게 의사 결정을 과감하고 빠르게 했다"며 "전력시장 서비스 관련 기술을 최대한 에이블의 것으로 만들어 실력을 키워보려 한다"고 말했다.

에이블은 당장 돈을 버는 조직은 아니다. 세화리 ESS만 해도 배터리 보증 연한이 15년인데 현재 전력시장 체계로 전기를 팔아 투자액을 거둬들이는 데 16년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히려 지금 수익을 내는 것보다 기술력을 꾸준히 올려야 하는 인프라 사업인 만큼 미래를 내다본다. 실제 이를 위해 LG엔솔은 최근 조직개편을 통해 CIC였던 에이블을 CSO(최고전략책임자) 산하 에너지 서비스(Energy-as-a-Service, EaaS) 사업을 총괄하는 조직으로 위상을 끌어올렸다.

회사 관계자는 "재생에너지 규모가 증가하면 글로벌 ESS, 가상발전소 시장 모두 커질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확장성을 보고 꾸준히 투자할 방침"이라며 "CIC에서 EaaS 사업 총괄로 올라선 에이블이 사내 다양한 조직들과 시너지를 내 글로벌 시장에서도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귀포= 이상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