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 문화부 기자들에게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기쁜 일인 동시에 재난이었다. 기사를 쏟아내야 했는데 작가 본인은 말을 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기삿거리를 찾아 그의 글과 말을 허겁지겁 뒤지다 이 글 앞에서 멈췄다. 문학계간지 '문학동네' 2013년 겨울호에 실린 '아름다운 것에 대하여 – 최인호 선생님 영전에'.
당대의 작가 최인호는 그해 가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강은 샘터출판사 수습기자 시절인 1993년 그를 '필자 선생님'으로 처음 만났다. 한강은 그를 천진하게 따스했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손님이 올 때마다 커피를 타서 날라야 했던 한강의 내색하지도 않은 고단함을 혼자 조용히 알아본 사람, 출판사를 그만두고 전업작가로 살겠다는 한강이 대견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해서 식사도 거르고 이런저런 조언을 해준 사람.
투병 중에 찾아온 한강과 바닷가를 조금 걷고 나서 최인호는 쇠한 음성으로 말했다. 너에게만 비밀을 알려준다는 듯이. "인생은 아름다운 거야, 강아.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네가 그걸 알았으면 좋겠어. 인생은 아름다운 거다. 난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한강은 이어서 썼다. "내가 그걸 영영 알지 못할까 봐, 그게 가장 큰 걱정인 것처럼 그렇게 반복하셨다. (…) 잊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이 내게도 있었다. 나를 '문썬'이라 부르던, 최인호와 같은 해에 세상과 작별한 회사 선배. 작은 병실에서 마지막으로 만난 날 몸이 아주 작아진 선배는 말했다. "이런 저녁이면 거리로 나가고 싶다. 저녁 거리를 걷는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산다는 건 대단한 무언가 없이도 참 좋은 거였다. 그걸 몰랐다. 문썬, 너는 미리 알아라. 알고 살아라." 선배가 떠나고 한동안은 정성스럽게 살아야겠다고 저녁마다 새로 다짐했지만 어느새 다 잊었다.
삶은 아름답고도 참 좋은 것이라고, 최인호와 나의 선배는 거룩한 유언처럼, 마지막 잔소리처럼 말했다. 그건 그저 태평하게 살라는 말이 아니었다. 삶을 알알이 맛보고, 낱낱이 알아보고, 끝까지 애쓰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깨달음은 미리 오지 않는다. 영영 알지 못할 것처럼 살다가 죽음을 마주하고 나서야 아프게 온다.
경북 칠곡 지천면에서 결성된 '수니와 칠공주'는 멤버 평균 나이가 85세인 8인조 래퍼 그룹이다. 할머니가 되고서야 한글을 배운 이들은 삶의 곡절을 시로 쓰고 랩으로 만들어 불렀다. 전성기를 만났는데 멤버 서무석씨가 얼마 전 눈을 감았다. 딸은 "엄마는 천국 같은 1년을 살다 가셨다"고 했다. 남은 멤버들은 빈소에서 랩을 했다. 통곡하는 대신 멋부린 발음으로 랩을 했다. "무석이가, 빠쥐면, 랩이 아니쥐. 무석이가, 빠쥐면, 랩이 아니쥐…" 유족들의 오열이 비트박스처럼 가사 사이사이를 흘렀다.
한강이 잊지 않겠다던, 나는 잊어버린 "인생은 아름다운 거야"라는 말이 그날의 빈소를 채웠다. 한스러운 긴 시간을 버텨내고 기어이 찬란해진 당신들의 인생은 아름다웠다. 참 좋았다. 인생이 아름다워지기에 늦은 때란 없는 거였다. 고통과 상실 앞에서 인생은 제가 아름다운 존재임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는 사실 역시 빈소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 잔인함에서 무엇을 건져내야 할까. 한강의 글이 질문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