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표현 사용 주저한 주일본 한국대사… '대일 저자세 외교' 논란 계속

입력
2024.10.1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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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서 "강제동원 표현 왜 안 쓰나" 지적 제기
박철희 대사 "외교적 파장...  쓰겠단 말 못 해"
여당 의원도 "강제동원은 역사적 사실" 질타

박철희 주일본 한국대사가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해 "(내가 대사로 근무하며) 강제동원·강제노역이라는 표현을 쓰겠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18일 밝혔다. 일본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외교관이 역사 문제를 논의할 때 한국이 아니라 일본 측 용어를 사용하겠다는 입장을 취한 셈이다. 지난 8월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의 '일본의 마음' 발언 논란에 이어, 이날 박 대사도 '강제동원' 표현 사용을 주저하는 모습을 보임에 따라 윤석열 정부의 '대일 저자세 외교 논란'이 또다시 불붙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 입장 대신 '일본의 표현' 쓰는 주일대사

박 대사는 이날 일본 도쿄의 주일 한국대사관에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해 "(일본인을 상대로 한 행사나 인터뷰 때 강제동원 표현을 쓸지) 실무진과 검토해 보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박 대사는 공개 석상에 참석할 때 '한국에서 온 노동자가 가혹한 환경에서 힘든 노동을 했다'고 표현한다. '강제동원'이라는 표현을 단 한 번도 쓰지 않았다"고 지적하는 과정에서 나온 답변이었다.

박 대사는 이 의원의 거듭된 추궁에도 "외교적 파장을 고려해야 한다"며 즉답을 피하기만 했다. 강제동원이나 강제노역과 관련해 '강제성'을 숨기려 하는 일본식 표현을 사용하려는 듯한 모습만 보인 것이다. 이에 여당마저 박 대사의 고집을 질타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대사가 상대국(일본)을 존중하려는 의도라 해도, 한국 정부 입장을 명확히 말해야 한다"며 "강제동원은 역사적 사실이고 한국 정부의 입장"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사도광산 추도식 올해 안에 열 것"

박 대사는 감사가 한 차례 중지된 후에야 입장을 바꿨다. 의원들이 오후 감사에서도 '강제동원 표현 사용'을 촉구하자 그는 "앞으로 그렇게 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이날 박 대사 발언은 지난달 28일 그가 일본의 한 행사장에서 현지 언론과 인터뷰하며 '한일'이 아니라, "일한국교정상화" "일한관계" 등의 표현을 사용해 일으켰던 논란에 다시 불을 지핀 꼴이 됐다.

윤석열 정부의 '대일 저자세 외교'가 도마에 오른 것은 이뿐이 아니다. 한일 정부는 일본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찬성에 합의하는 대신,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 사실 등 전체 역사를 설명하는 전시 시설을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전시 시설에는 강제성을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표현이 담기지 않아 한바탕 논란이 일었다. 또 김태효 차장이 지난 8월 16일 KBS 인터뷰에서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 여전히 소극적으로 나온다'는 지적에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이다. 마음이 없는 사람을 억지로 다그쳐 사과를 받는 것이 진정한가"라고 답한 것도 비판을 받았다.

이날 박 대사는 사도광산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 추도식과 관련, 일본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등이 참여하는 위원회 형태로 "올해 안에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애초 지난 9월 중 개최 예정이었으나 양국 협의 난항 속에 지연되고 있다. 피해자 명부 확보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 측에 계속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쿄= 류호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