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청장 무죄, 용산서장 유죄... ①직접 의무 ②예견 가능성이 운명 갈랐다

입력
2024.10.1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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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서 현장 경찰관만 유죄받은 이유

용산경찰서장 유죄, 그의 직속상관인 서울경찰청장 무죄.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당시 가장 중요한 지휘라인에 서 있던 경찰 지휘관 두 사람의 운명은 이렇게 극단적으로 갈렸다. 자기 관할에서 발생하는 치안 변수를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지위에 있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러나 직접 현장에서 사태를 챙기는 지휘관인 경찰서장과 달리, 관할서 보고를 받은 뒤 판단해야 하는 지방경찰청장의 경우 △사고 예견 가능성 △구체적 주의 의무를 지나치게 높게 잡을 수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17일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 권성수)는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를 받는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과 서울청 간부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지난달 30일 같은 법원 형사합의11부(부장 배성중)가 동일한 혐의로 기소된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에게 금고 3년형을 선고한 것과 대조적이다.

양 재판부 설명을 종합하면, 김 전 청장과 이 전 서장 모두에게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일대 핼러윈데이 행사에 대한 주의 의무가 있었다. 판단이 갈린 건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주의 의무가 있었느냐다. 유죄를 선고한 형사11부는 "정보, 경비, 교통 등 기능별 안전대책을 적절히 수립해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었다"며 △용산서 경비과를 대책 수립에 관여시키지 않고 대책을 세우지도 않은 점 △현장에 정보관을 배치하지 않은 점 △범죄단속에만 치중한 점 등을 구체적 주의의무 위반 사항으로 꼽았다. 그러나 무죄를 선고한 형사12부는 "(서울청장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보고받은 정보를 토대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며, 통상 예견할 수 있는 범위를 넘는 이례적 사태의 발생을 대비할 것까지 요구할 수는 없다고 했다.

'사고 예견 가능성' 평가도 달랐다. 김 전 청장 재판부는 "피고인은 관내 대규모 인파 집중으로 인한 재난 및 안전사고에 대한 실질적 대응책을 마련하고 직무를 수행하는 경찰을 지휘·감독할 책임자"라면서도 "서울청장에게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주의 정도나 당시 보고된 내용의 한계, 관련 규정을 기반으로 봤을 때 사고를 예측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봤다. 특히 다중운집행사 안전관리 매뉴얼이 직접 적용되는 서울세계불꽃축제 행사와 달리, 이 사건 사고는 △제한되지 않은 장소에서 △사람들이 계속 이동하는 상황 중 발생한 사고라 매뉴얼이나 과거 업무 경험만으로 미리 사고를 대비하긴 힘들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반면 이 전 서장 재판부는 사고 예견가능성을 넓게 해석했다. "대형 참사의 결과 전부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정 공간에 군중의 밀집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일반적 사고, 즉 전도·추락·압사 등의 안전사고라는 결과의 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는지"를 따졌고, 이 전 서장이 이를 분명히 인지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그 근거로 △용산서의 과거 핼러윈데이 치안대책 △사고 전날 인파유입 상황 △경찰의 정보보고 등이 있었다고 밝혔다.

정리하자면 경찰서장은 보다 직접적인 인파 관리 책임자로서, 현장에 좀 더 가까이 있으면서 당시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반대로 지방청장은 일선 경찰서나 지방청 정보 기능 등의 보고를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경찰서장과 똑같은 정도의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다만 서로 다른 1심 재판부가 판단한 것이라, 이런 차이점은 상급심(서울고법·대법원)에서 좀 더 다른 방향으로 정리될 수는 있다.

유족 측은 무죄 결론을 납득할 수 없다며 검찰에 즉각 항소를 요청했다. 유족 진창희(53)씨는 "김 전 청장은 인파 관리 필요성을 보고받은 사람"이라며 "사법부가 무능과 무력함을 그대로 드러냈다"고 한탄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10·29 이태원 참사 태스크포스 소속 백민 변호사는 "형사 책임으로 참사를 규정하는 것도 매우 협소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두 사람이 예견했던 인파 위험성은 비슷하고 알던 정보도 비슷할 텐데, 용산서는 1차 기관, 서울청은 2차 기관으로 면죄부를 주는 게 과연 타당한가"라고 따져 물었다.

서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