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공문 보내 대량 주문 후 잠적...군인 사칭 '노쇼'에 속수무책

입력
2024.10.19 19:00
군인 사칭 남성, 꽃집에 화분 대량주문
육군참모총장 명의 가짜 공문도
와인 요구한 뒤 거절하면 '잠적'

몇 달 전 군인을 사칭한 인물로부터 270만 원어치의 고기를 주문받았다가 '노쇼'(no-show·예약 후 나타나지 않는 것을 의미) 피해를 당한 자영업자의 사례가 온라인상에서 큰 관심을 모은 후 유사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군인·군부대를 사칭한 주문 사기에 대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최근까지도 유사한 사례가 지속되고 있다.

19일 울산시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A씨는 지난주 자신을 '육군 김모 소위'라고 소개한 남성으로부터 80만 원어치의 화분을 주문받았다가 노쇼 피해를 당했다고 밝혔다.

A씨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10일 저녁 (사칭범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군부대 진급 행사가 있다며 서양란을 크고 화려하게 해 달라고 해서 정성스레 만들었다"고 말했다.

육군 소위 사칭 남성, 화분 80만 원어치 주문

사칭범은 사전에 진급자들의 이름과 축하 문구도 일일이 전달했고, 육군참모총장 직인이 찍힌 그럴싸한 가짜 공문까지 보내 왔다. '부대 진급 행사 물품 공급 확약서'라는 제목의 공문에는 '자사는 10월 11일 부대비용에 대한 결제서류를 지출한다', '12일 부대비용을 청구하오니 결제 바란다', '귀사는 부대 진급 행사 물품에 협조해 주심이(에) 깊이 감사드린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공문을 본 A씨는 깜빡 속고 말았다. '제출'을 '지출'로 잘못 쓰는 등 내용을 자세히 보면 수상한 점이 여럿 있으나, 공문 상단 좌우엔 육군본부가 실제 공문에서 사용하는 로고가 있었고 하단엔 군부대 주소 등이 나와 있는 등 전반적으로 실제 공문 양식과 유사했다.

"와인 대신 사달라" 요구… 입금 요구하자 '잠적'

평소에도 공공기관과 거래를 자주 해 온 A씨는 의심 없이 80만 원어치의 화분을 준비했다. 그러던 중 마침 지인으로부터 옆 동네 꽃집이 노쇼 피해를 당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해당 지인은 "(군인이라는 사람이) 와인에 대해 얘기하면 사기니까 조심해라"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마침 다음 날 사칭범이 와인 얘기를 꺼내자 A씨는 "당신들 사기 아니냐"고 했지만 전화 속 사칭범은 부인했다. A씨가 "입금부터 하라, 아니면 신고하겠다"고 하니 알겠다고 했지만 잠적해 버렸다. A씨와 통화를 주고받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면 꺼져 있다는 응답이 나왔다. 울산울주경찰서는 정식으로 고소장이 접수되면 수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전국 각지서 유사 피해… 육군 "대응책 고민"

A씨는 이런 내용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공유했는데, 동일범으로 추정되는 인물로 사기 피해를 당할 뻔한 자영업자들의 경험담이 이어졌다. 충남 태안에서 꽃집을 운영 중인 B씨는 "돈은 (화분을) 찾는 날 준다고 해 거절했는데, 다른 지역으로 갔나 보다"라고 말했다. 이 밖에 대전, 강원 속초시 등 전국 각지에 있는 꽃집이 피해 사례를 공유했다. A씨가 받은 공문과 동일한 내용의 공문을 받은 자영업자들도 있었다.

A씨가 당한 사기 수법은 앞서 지난 7월 JTBC '사건반장'을 통해서도 소개됐다. 수법은 동일했다. 군부대 진급 행사를 핑계로 꽃집에 꽃, 화분 등을 대량 주문한 뒤 와인을 대신 구매해 달라고 부탁하는 식이었다. 경북 안동시에서 30년째 꽃집을 운영하는 C씨는 지난 7월 22일 군인을 사칭한 남성이 90만 원어치 화환 등을 주문한 뒤 잠적하는 바람에 꽃을 모두 폐기했다.

자영업자들의 피해가 늘어나면서 육군도 대응책 마련에 나설 예정이다. 육군 관계자는 "피해가 추가로 발생하지 않도록 대응책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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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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