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판도 흔들었던 '금사과', 올해도 폭염으로 '은사과' 되나

입력
2024.10.2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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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보다 싸지만 평년보다 높아
국내 1위 생산지 청송도 上品 적어
지난해 냉해·병해로 약해진 나무가
올해 늦게까지 계속된 폭염 여파로
일소·해충·열과 많고 큰 열매 적어

사과 마니아 A(59)씨는 최근 동네 청과점에 갔다 눈을 의심했다. 과즙이 많고 특유의 향이 나는 ‘감홍 사과'가 그리 큰 것도 아닌데 3개에 1만 원이나 했기 때문이다. 풍부한 과즙과 노란색으로 인기가 높은 ‘시나노골드’는 노란빛이 아니라 풋풋한 초록빛이 났다. 청과점 주인은 “폭염으로 낙과가 심해 덜 익은 상태에서 땄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역대급 흉작으로 가격이 앙등, 올해 총선을 앞두고도 '금사과' 논란이 빚어졌던 사과값이 올해도 예년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는 태풍도 없어 풍작을 기대했는데 폭염으로 수확량이 감소, ‘은사과’ 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22일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사과 생산량은 39만4,428톤으로 농업사상 최악의 해로 꼽히는 1980년(41만47톤)보다도 적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나아졌지만 여전한 흉작으로 서민들에게 사과값은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가락시장 홍로사과 도매가는 상품 10㎏ 1상자에 평균 4만9,2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8% 하락했다. 지난해보다 반입량이 18.4% 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직전 5년간 평균인 3만5,148원보다는 39.9%나 높은 수준이다. 이번 달에도 이런 추세는 이어지고 있다. 10월 중순쯤 많이 출시되는 감홍사과는 지난 17일 서울농수산식품공사 경락가가 특품(10㎏) 10만1,738원으로 지난해보다 33%가량 낮았지만 평년보다 24%나 높았다. 비슷한 시기에 주로 출하하는 양광은 7만4,000원으로 지난해와 비슷했으나 평년보다는 44.9%나 비쌌다. 부사도 특품은 1상자 9만4,413원으로, 지난해(9만5,000원)와 비슷했으나 평년에 비해 93.4%나 비쌌다. 이달 말부터 부사가 본격 수확되더라도 사과 가격은 쉽게 떨어지지 않을 전망이다. 예년만 못한 작황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는 올해 사과 생산량을 48만1,000톤 내외로 전망했다. 평년(49만1,000톤)에 못 미친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사과값은 강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서경수 청송농업기술센터 과수기술팀장은 “청송은 다른 지역보다 작황이 좋은 편이지만, 9월 중순 많은 비로 열매가 갈라지는 열과가 많았고 가격이 비싼 대과(大果)도 적었다"며 “역대급 흉작이었던 지난해보다는 분명 낫지만 평년보다는 물량도 적고 상품이 적어 농가소득에 도움이 될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폭염이다. 7, 8월까지만 해도 올해는 냉해가 거의 없어 평년작을 웃돌 것으로 예상됐지만 폭염이 늦게까지 이어지면서 알도 굵지 않고 껍질이 햇볕에 데는 사과가 생산됐다. 당도도 낮다. 서 팀장은 “일교차가 심해야 낮에 광합성한 양분을 열매에 저장하는데, 더워서 호흡으로 다 써버렸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 때문에 수확도 평년보다 1주가량 늦게 이뤄지고 있다. 청송에 이어 국내 사과 생산 2위인 영주와 부사보다 출하시기가 이른 감홍이 주력인 문경지역은 사정이 더 나쁜 것으로 알려졌다. 이호준 문경 샘꿀사과 대표는 “평년에는 감홍사과 정품 비율이 60~70% 이상인데, 지난해는 10~20%밖에 안 됐고 올해도 50%에 못 미칠 것 같다”며 품질 문제를 우려했다. 영주시 풍기읍에서 25년간 사과농사를 지어온 김진학 영주사과발전연구회장은 “지난해 서리 저온 등으로 가지가 웃자라고 나무가 약해진 상태에서 올해는 폭염으로 수확기 사과를 직격하는 복숭아순나방 등 해충 피해가 많았다”며 "병충해방제도 평년보다 많이 할 수밖에 없어 농민들은 약값, 인건비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문경시는 19~27일 문경새재도립공원 일원에서 문경사과축제를 열고 지역 주력인 감홍과 시나노골드, 양광사과 등을 전시ᆞ판매한다. 청송군도 31일~11월 3일 청송읍 용전천 현비암 일원에서 청송사과축제를 열고 국내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부사계열 사과를 선보인다.


정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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