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수장 야히아 신와르가 사망하면서 1년 넘게 이어져 온 가자지구 전쟁도 새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미국 등 국제사회는 일제히 이스라엘을 향해 '전쟁 승리를 선언하고 휴전 협상에 적극 나서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제거 대상 1순위'였던 신와르가 숨졌으니 하마스와의 전쟁을 계속할 이유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쟁 덕에 '정치적 부활'에 성공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순순히 응할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이스라엘로선 이참에 레바논 친(親)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 시리아, 심지어 이란에 대한 '공세 모드'를 강화할 공산이 크다. 이에 맞서 이란을 위시한 '저항의 축'(반미·반이스라엘 동맹)이 보복에 나설 경우 전쟁 규모가 더 확대될 수도 있다. 중동 정세는 당분간 '시계제로'의 불안정을 유지할 것이라는 얘기다.
1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신와르 제거' 공식 발표가 나온 이날 성명을 통해 "하마스는 이제 또 다른 테러를 감행할 능력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하마스가 통치하지 않는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에 더 나은 미래를 제공할 정치적 해결을 위한 기회"라고 덧붙였다. 이스라엘을 향해 휴전 협상 재개, 궁극적으로는 종전 선언을 하라는 촉구였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네타냐후 총리와 전화 통화를 하고 인질 석방·종전을 위해 이 동력(신와르 사망)을 어떻게 활용할지 논의했다"고 전했다.
여기에는 하마스가 '괴멸적 타격'을 입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지난 7월 말 이스마일 하니예 정치국장이 이스라엘의 표적 공습으로 숨진 지 약 3개월 만에 그의 후임인 신와르도 사망하며 지도부가 사실상 와해된 만큼, 이제는 인질을 풀어주고 휴전에 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군 고문을 지냈던 마이클 밀스타인은 "이것은 하마스의 종말이 아니고 '게임 오버'도 아니지만, 거래를 촉진할 기회"라며 "신와르 사망 이후 하마스의 기본 입장이 더 유연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는 '신와르 제거' 발표 직후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인질)이 돌아올 때까지 전력을 다해 전쟁을 계속할 것"이라는 영상 메시지로 찬물을 끼얹었다. 그는 "전쟁은 아직 안 끝났다"고까지 말했다. '완전한 승리'는 신와르를 제거하는 게 아니라, '하마스 조직의 궤멸'이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국내 정치적 기반이 취약한 네타냐후 총리로선 수시로 '연정 탈퇴' 으름장을 놓으며 확전을 요구하는 극우파의 눈치를 봐야 한다. 연정 내 대표적 극우 인사인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은 이날도 엑스(X)에 "역사적인 암살… 우리는 완전한 승리까지 온 힘을 다해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썼다.
극우파가 연정에서 발을 빼면 네타냐후 총리는 실각 위험을 안고 조기 총선을 치러야 한다. 뇌물 등 부패 혐의로 재판을 받는 그에게 실각은 치명타다. 미국 싱크탱크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애런 데이비드 밀러 연구원은 "네타냐후에게 '두 국가 해법'(이스라엘·팔레스타인 공존)이나 '가자에서의 철수'를 얘기하는 것은 여전히 금기"라고 분석했다.
애초 하마스가 '붕괴 직전'에 처했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시각도 많다. 이스라엘은 2004년에도 하마스 창립자 셰이크 아메드 야신과 당시 수장 압델 아지즈 란티시를 각각 암살했지만, 하마스는 무너지지 않았고 보복 의지를 더 불태웠다. 가자지구 알아즈하르대의 음카이마르 아부사다 교수는 "하마스는 지도자가 죽으면 다른 지도자가 싸움을 이어받는다. 수년간 계속돼 온 일"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하마스만의 싸움도 아니다. 이스라엘의 전쟁은 더 이상 가자지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미 레바논에서 헤즈볼라와 지상전을 벌이고 있고, 이란 군사시설 등을 겨냥한 공격 계획도 수립해 둔 상태다. 이란 주유엔 대표부는 이날 X를 통해 "점령과 침략이 존재하는 한 저항은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헤즈볼라 역시 "적들과의 대결에서 새롭게 확전하는 단계로 전환을 발표한다"며 대(對)이스라엘 보복을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