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2022년 6월 22년 차 용접공 유최안 당시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건조 중이던 원유 운반선 위 가로·세로·높이 1m 철창에 스스로를 가둔 채 농성하며 던진 질문이다.
선박 점거 농성은 대표적인 '고위험·저임금' 직종인 조선소 하청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현실을 알리기 위해 불가피하게 택한 방법이었다. 고숙련 노동자인 그가 그해 1월 받은 월급은 207만 원, 시급으로 따지면 최저임금보다 살짝 많은 1만350원이었다.
사지를 뻗을 수도 없고, 용변은 기저귀로 해결해야 하는 철창 속에서 유 부지회장은 한여름 31일을 났다. 노동조건이 개선되려면 하청업체뿐 아니라 기성금(도급 단가)을 결정하는 원청(당시 대우조선해양)도 교섭에 참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를 포함한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의 파업은 51일째 하청업체 노사가 합의하며 극적으로 종료됐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은 파업을 주도한 하청노조 집행부 5명을 상대로 470억 원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1인당 95억 원꼴이다. 손해배상청구소송과 별개로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 중 절반에 가까운 70여 명에 대한 형사고소도 진행됐다. 이후 대우조선해양은 한화그룹에 매각됐고, 지난해 5월 한화오션이 출범했다.
조선소 주인이 바뀌었어도 파업 노동자 22명은 무더기 기소됐다. 지난 16일 창원지법 통영지원의 1심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유 전 부지회장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김형수 지부장 징역 4년 6개월 등 12명에게 총 20년 4개월의 징역형, 10명에게 총 3,300만 원 벌금형이 구형됐고 선고는 다음 달이다.
금속노조는 18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헌법 정신과 시대가 요구하는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법원은 무죄 판결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조선업 초호황에 원청 조선소는 수주 대박과 수백억, 수천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지만 하청업체는 적자를 견디지 못해 폐업하고 하청 노동자는 임금체불로 고통받는다"면서 "심각한 인력난을 다단계 하청 물량팀과 이주노동자 고용 확대로 해결하려 해 올해 들어 중대재해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올해 들어서만 한화오션 사업장에서는 하청 노동자 7명이 사망했다. 조선업계 전체로 넓히면 23명이 숨졌다.
470억 원 손해배상 소송은 현재 진행형이다. 다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용우 의원실에 따르면 한화오션은 최근 손해 배상과 관련해 "국회에서 중재 노력을 하면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한화오션은 "회사로서는 법률 이슈 같은 부분이 걱정이 된다"면서도 "그런 쪽에서 문제가 없다면 국회가 주선하는 대화는 진행해 보는 방향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아울러 한화오션은 정부(고용노동부 통영지청)가 원하청 노조와 하청업체를 포함해 산업안전 관련 협의체를 구성한다면 참여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