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초기업노조는 왜 이재용 회장에게 "챗GPT 사용 제한 풀어 달라" 요구했나

입력
2024.10.18 18:00
이재용 회장·정현호 TF장에 공개 서한
"남들과 똑같은 8시간은 안 돼"
삼성 위기론에 노조가 "인사 보신주의" 지적


최근 불거진 '삼성 위기론'에 삼성의 5개 계열사 노동조합을 아우르는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초기업노조)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메일을 보냈다. "삼성그룹의 위기는 대한민국 재계 전반에 영향이 갈 수 있는 중대 사안"이라 다양한 혁신을 위해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를 업무에 쓸 수 있게 해달라는 제안을 담았다. 노조는 현재 삼성그룹에 "보신주의 리더가 넘쳐난다"며 인사제도 개편도 요구했다. 노조가 기업에 조직 혁신을 먼저 요구한 건 이례적이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초기업노조는 전날 이 회장과 정현호 사업지원TF장(부회장)에게 '초기업노조가 제안하는 삼성그룹 변화의 시작'이라는 공문을 메일로 보냈다. 초기업노조는 삼성전자 DX노조, 삼성화재 리본노조, 삼성디스플레이 열린노조,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생노조, 삼성전기 존중지부 등 5개 노조가 모인 조직이다. 노조 측이 밝힌 조합원 수는 1만9,800명으로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초기업노조의 요구 사항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챗GPT의 업무용 사용 허가다. 노조 관계자는 "회사가 보안상의 이유로 업무에 챗GPT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거나 극히 제한해 허용한다"며 "최고의 툴을 사용해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사용 제한을 해제해 달라"고 말했다. 회사가 우려하는 보안 문제는 챗GPT에 입력한 질문을 암호화하는 엔터프라이즈 버전 등을 사용하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노조는 공개 서한에서 "우리는 남들과 똑같은 여덟 시간을 보내면 안 된다"며 "8시간 안에서 효율적으로 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기업노조는 인사 및 성과급제도 개편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새로운 인사 제도 도입 후 승진 메리트(이점), 보상이 전무해졌고 많은 직원이 일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며 "현재 인사제도에서 보신주의 리더가 넘쳐나고 있고 잘못된 평가가 누적돼 직원의 사기는 하락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샐러리캡(직급별 연봉 상한) 폐지 △적정한 승진체계 △연봉구조 개편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 등 새 보상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노조 관계자는 "삼성 위기론에 직원들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 회장과 정 부회장에게 메일을 보낸 것"이라며 "노조는 회사 앞길을 막는 존재가 아니라 파트너이고 (위기를 극복하려면) 노사가 함께 달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