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에서나 선거를 앞두고 후보 또는 잠재적 후보에 대해 여론조사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여론조사 결과를 공직선거 후보 경선이나 당대표 선거에 직접 반영하는 경우는 드물다. 공직선거 후보 경선이나 당대표 선거를 당원 투표와 여론조사를 적당한 비율로 섞어서 하는 관행이 2000년대 들어 우리 정치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또한 정당 소속이 다른 후보들이 여론조사를 통해 단일화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선 여론조사의 투명성과 공정성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럼에도 여론조사의 공정성을 두고 말이 많았다. 2007년 대선은 한나라당 후보가 본선에서 무조건 승리하는 분위기라서 한나라당 경선이 사실상 본선과 같았다. 당심(黨心)과 민심을 모두 반영하는 방식으로 치른 한나라당 경선에선 이명박 전 시장이 박근혜 전 대표를 간발의 차이로 이겼다. 박근혜 지지자들은 여론조사가 불공정했다고 생각했으나 박근혜가 결과에 승복함으로써 그대로 넘어갔다.
소속 정당이 다른 후보들이 여론조사로 후보 단일화를 정하는 경우는 과연 그런 식으로 후보를 정하는 것이 민주주의 원칙에 부합하는가 하는 근본적 문제를 야기한다. 2002년 대선을 앞둔 노무현과 정몽준 사이 단일화와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오세훈과 안철수 간의 단일화는 여론조사로 이뤄졌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박영선과 박원순 간의 단일화에서도 여론조사 결과가 중요한 요소였다. 2011년 서울시장 선거는 당시 야권이 절대적으로 우세한 구도였고, 2021년 서울시장 선거도 당시 야권이 승리하는 구도였다. 이런 선거에서는 본선보다 여론조사가 좌우하는 단일화가 사실상 선거 결과를 결정했으니 문제라고 하겠다. 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이 후보 경쟁력을 사전에 판단한다면서 신뢰할 수도 공개할 수도 없는 여론조사를 사용하는 관행도 큰 문제다.
그런 점에서 자신이 여론조사를 조작해 여권의 선거를 움직였다는 명태균의 주장은 우리 선거과정의 취약한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어 매우 심각하다. 명씨는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 여론조사 추이가 주목되던 시점에 윤석열 지지도를 홍준표보다 2%포인트 앞서도록 지시했으며, 실제로 여론조사 결과가 그대로 나왔다고 한다. 나경원 의원이 2021년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경선과 당대표 선거는 의외의 연속이었다면서 명씨가 여론조사 룰 변경에 개입하고 당내 여론조사를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 데도 주목해야 한다. 나 의원 주장이 진실에 입각했는지를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나, 여론조사가 결정적인 당내 경선과 당대표 선거에서 그 같은 조작이 있었다면 심각한 문제다. 명씨의 대선 후보 경선 개입이 사실이라면 윤석열 정권은 정당성 자체가 흔들리며, 나 의원의 주장이 진실이라면 국민의힘은 존재할 이유를 상실하게 된다.
여론조사에 의존하는 우리의 선거 제도를 개혁할 필요도 절실하다. 대통령 선거는 프랑스와 같이 결선투표를 거치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의 경우는 캘리포니아 등 몇 개 주가 시행하고 있는 결선투표 방식의 톱 투 프라이머리를 도입하는 방안을 고려할 만하다. 결선투표는 정당 장악력을 약화시켜서 다당제를 촉진하기 때문에 양당 정치의 폐단이 큰 우리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캘리포니아 방식의 결선투표를 도입하면 정당의 공천권은 없어지기 때문에 공천권을 장악하기 위해서 당대표 선거에 사활을 거는 우리 정당의 퇴폐적인 패권 정치도 사라지게 된다. 불투명하고 조작에 취약한 여론조사에 국가 운명을 맡기기보다는 유권자가 투표장에 두 번 가는 것이 주권재민(主權在民) 원칙에도 부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