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어린이책 '픽'은 이 책...스웨덴 동화책에서 5·18을 떠올렸다

입력
2024.10.18 16:00
10면
어린이 한강 울린 책… '소년이 온다'와 접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사자왕 형제의 모험'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지. 그렇지 않으면 쓰레기와 다를 게 없으니까."

독재자 텡일의 지배에 맞서 싸우기 위해 떠나는 형 요나탄이 동생 칼에게 하는 말이다. 아동문학의 고전인 스웨덴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사자왕 형제의 모험' 속 한 대목. 1983년 여름날 당시 12세였던 작가 한강은 서울 수유리의 조그만 방에서 이 책을 읽고 오래 울었다. 훗날 군부 독재와 싸운 1980년 광주를 배경으로 한 그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와도 닿게 된다.

"나의 내면에서 80년 광주와 연결된 책"

'사자왕 형제의 모험'은 한강이 지난 10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된 직후 스웨덴 한림원과의 인터뷰에서 '영감의 원천'으로 밝히면서 다시금 회자됐다. 4일 만에 교보문고에서 판매량이 38.3배 늘었다.

한강은 2017년 노르웨이에서 열린 한 문학 행사에서 이 책과 5·18, '소년이 온다'를 언급했다. "칼이 관찰하는 독재자 텡일의 모습, 그가 조종하는 살인의 화신 카틀라, 그에 맞서 연약한 사람들이 연대하는 과정이 어째서인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 나의 내면에서 이 책이 80년 광주와 연결돼 있었다." 린드그렌 역시 평생 어린이, 여성, 동물처럼 약하고 억압받는 존재들을 위해 목소리를 낸, 세계적으로 이름난 동화작가다.

그림책에 관심 남달라… 직접 창작도

한강도 '천둥 꼬마 선녀 번개 꼬마 선녀'(2007)라는 어린이책을 냈다. 그가 쓴 유일한 창작 그림책. 당시 한강은 "엄마가 된 이후 어린이책에 깊은 관심을 갖게 돼 이 이야기를 썼다"고 밝혔다. 꼬마 선녀 둘이 세상 구경에 나서는 여정을 그린 책은 교보문고 유아 부문 판매 1위에 올라 있다. 엄희정 문학동네 그림책팀장은 "오래전 책인데 이번 수상을 계기로 다시 주목받고 많이 읽힐 수 있게 돼 기쁜 마음"이라며 "열심히 찍고 있지만 양장 그림책이라 인쇄에 시간이 걸려 다음 주쯤 책이 풀릴 것"이라고 했다.

한강은 어른을 위한 동화로 '내 이름은 태양꽃'(2002)과 '눈물상자'(2008) 등 2권을 썼다. 모두 주문량이 밀려 예약판매 중이다.

한강은 그림책 분야에 큰 관심을 보여왔다. 2021년 '작별하지 않는다'의 동네책방 에디션을 내면서 표지를 이수지 작가가 선보인 '심청'의 바다 그림으로 직접 요청해 실었다. 당시 '심청'은 정식 출간된 책이 아니었다. 한강이 아들과 함께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서울 서촌의 독립서점 '책방오늘'은 그림책 코너를 따로 두고 독특한 큐레이션을 선보인다. 이수지, 백희나, 권윤덕, 고정순 등 그림책 작가를 초대하는 '책방오늘, 그림책 이야기'라는 소규모 북토크도 이어왔다.

권영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