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헌법에 '한국=적대국' 명시...적대적 두 국가의 길 나선 김정은

입력
2024.10.17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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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철저한 적대 국가로 규제한 공화국 헌법"
12일부터 북한 공식 담화, 매체에서 '주체 연호' 사라져

북한이 헌법을 개정해 한국을 적대국가로 규정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말부터 주창해온 '적대적 두 국가론'를 마침내 제도화한 것이다. 북한이 통일과 남북관계와 관련한 헌법 개정을 공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 대외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17일 이틀 전 경의선·동해선 남북연결도로 폭파 소식을 전하며 "대한민국을 철저한 적대 국가로 규제한 공화국 헌법의 요구와 예측 불능의 전쟁 접경으로 치닿고 있는 심각한 안보환경으로부터 출발한 필연적이며 합법적인 조치"라고 밝혔다. 통신은 또한 이번 폭파 감행이 "적대 세력들의 엄중한 정치·군사적 도발 책동"에 따른 조치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북한이 11일 주장한 '한국 무인기 평양 침투'를 일컫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같은 내용은 북한 주민들이 읽는 노동신문 1면에도 실렸다.

눈에 띄는 건 '적대 국가로 규제한 공화국 헌법'이란 표현이다. '적대적 두 국가론'을 반영한 헌법 개정이 있었음을 시사한 것이다. 북한의 기존 헌법에는 남한을 적대국으로 명시한 규정이 없다.

앞서 북한 매체는 지난 7~8일 열렸던 최고인민회의에서 개헌이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말부터 남북관계를 ‘특수관계’가 아니라 별개의 '두 국가'로 규정해 통일 문구를 삭제하는 등의 헌법 개정 의지를 밝혔다. 이에 따라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는 김 위원장 지시에 따라 헌법 개정이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됐다.

다만 북한은 이날은 물론 상세한 헌법 개정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통일부 관계자는 "개헌을 했는데 공개하지 않은 것인지, 개헌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인지 판단할 만한 정보는 현재 없다"라며 "이번에 불명확하게 표현한 의도는 예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등이 얽혀 즉각적인 군사적 긴장을 일으킬 수 있는 '영토 조항'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도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지난 주말부터 북한의 공식 담화와 노동신문에서는 '주체 연호'도 자취를 감췄다. 주체 연호는 김일성 주석의 탄생년도 1912년을 1년으로 하는 연호다. 지난 12일 밤 나온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담화를 시작으로 다음 날 노동신문 지면과 홈페이지 제호엔 서기인 '2024년'이 표기됐다. '현대 국가화' '독자 우상화' 행보라는 분석이 지배적인 가운데 이 역시 '적대적 두 국가' 강화의 일환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실리적으로 선대와의 연속성을 차단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혜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