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을 선고하던 재판장도 결국 목이 멨다. 재판 내내 눈물을 흘리던 어머니는 딸을 살해한 김레아(27)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된 순간 땅에 주저앉고야 말았다.
수원지법 형사14부(부장 고권홍)는 23일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화성 오피스텔 살인사건' 범인 김레아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김레아가 3월 전 여자친구 A(22)씨를 살해하고 함께 있던 어머니 최유선(가명·47)씨에게까지 상처 입힌 지 반년 만이다.
그동안 유선씨는 단 한 번도 빼놓지 않고 김레아 공판에 참석했다. 원통한 마음에, 딸을 살해한 김레아에게 중형이 선고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이날도 법정을 찾은 유선씨는 함께 온 언니 손을 꼭 붙잡고 판결문을 단 한 자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재판장이 딸의 사인과 상처 부위 등을 언급할 때는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재판부는 김레아 측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레아는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엄마(유선씨)가 먼저 칼을 들고 있어 이를 빼앗는 과정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며 기존 진술을 뒤집었다. 우울증 병력이나 범행 당일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을 주장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법원은 김레아의 항변을 믿지 않고 △검찰이 제출한 증거와 정황 △어머니 유선씨의 증언 등을 토대로 김레아의 범행을 '계획범죄'로 규정했다.
재판장이 "피고인을 사회에서 영구히 격리시켜 생명을 보호하고 참회할 시간을 갖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을 때 유선씨는 무너졌다. 오열하던 유선씨는 "피고인이 항소할 경우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는 검사에게 연신 고개를 숙였다.
다만 이번 김레아 살인 사건은 범죄 피해자 및 그 유족들을 위한 제도적 지원에 여전히 빈틈이 많다는 점을 보여줬다. 김레아는 나라가 유선씨에게 지급한 구조금 2,185만 원을 검찰에 변제했는데, 이것이 실제 재판에서 감형 사유로 활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계속 있었다.
살인 같은 강력범죄 피해자에 대해 국선변호사를 지원하지 않는 제도에 대한 문제도 제기된다. 국선변호사 제도는 본래 변호인을 구하지 못한 피고인들의 최소한의 변론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다. 다만 성폭력, 아동학대, 장애인학대, 인신매매 등 사회적 약자 대상 일부 범죄에서만 피해자에게도 국선변호사 선임을 지원하고 있다. 이로 인해 경제적 형편이 좋지 않은 강력범죄 피해자가 자기 권리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
유선씨의 경우 김레아 측 변호인단이 돌연 사임하면서, 공판기일이 바뀌었으나 이를 알지 못해 헛걸음을 한 일도 있었다. 재판기록 열람·등사 여부는 온전히 사건을 맡은 담당 재판부의 재량에 달려있는 데다, 재판기록 열람·등사 불허 시 사유도 밝히지 않아 변호사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게 피해자들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