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장 탄핵 청원' 5만명 넘겼다... 국회가 심사 절차 돌입

입력
2024.10.17 04:30
10면
조지호에 대한 일선경찰 실망감 반영
고질적 업무과중·인력난 상황 속에서
"국민을 위한 경찰" 원칙·성과만 강조

전국 14만 경찰관을 통솔하는 치안총수에 대한 탄핵 청원이 5만 명 이상 동의를 받아 국회 심사를 받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탄핵 청원은 경찰 내부에서 시작됐는데, 결국 조직 바깥 일반 시민들에게도 공감을 받으면서 공론화 단계에 들어간 것이다. 국회가 얼마나 진지하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고질적 인력난과 업무 과중 상황에서 '더 열심히'를 외친 조지호 경찰청장이 리더십 위기를 맞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6일 국회 전자청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경찰과 시민을 죽이는 경찰청장의 지시에 대한 탄핵 요청에 관한 청원'은 전날 오후 동의인 수 5만 명을 넘었다. 국민동의청원은 30일 안에 5만 명의 동의를 얻으면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해 심사하는 제도다. 탄핵 청원은 법제사법위원회 소관으로, 법사위는 해당 청원을 심사해 본회의 부의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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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청원이 처음 올라온 건 이달 2일이다. 작성자는 27년 차 현직 경찰인 경남 김해중부경찰서 신어지구대 소속 김건표 경감이다. 그는 "최근 연이은 경찰관들의 죽음에 대책을 내놓아야 할 청장은 오히려 죽음으로 내모는 지시를 강행하고 있다"며 "경찰청장 탄핵을 강력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일선 경찰관이 실명으로 청장 탄핵을 요구하고, 국회가 정식으로 해당 사안을 검토하게 된 건 전례가 없던 일이다. 초유의 경찰청장 탄핵 파동은 조 청장에 대한 일선 경찰관들의 실망감이 반영된 움직임이다. 조 청장이 취임한 8월 경찰의 사기는 그야말로 '바닥'이었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수사부서는 물밀듯 밀려드는 사건에 몸살을 앓았다. 서울 관악서 통합수사팀의 A경위가 사망 전 업무 과중 등을 호소했던 것이 알려지며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치안 수요가 많은 지구대·파출소가 인근 관서의 인력·장비를 흡수하는 중심지역관서 제도, 칼부림 사건 이후 설치된 형사기동대·기동순찰대로의 인원 차출 등으로 강한 업무 강도에 시달렸다. 쏟아지는 민원과 다중 인파 관리, 재난상황 관리 등 일은 늘어났는데 인력은 부족하다는 호소도 컸다.

이런 상황에서 조 청장에게 거는 경찰의 기대는 컸다. 그러나 그의 행보는 현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취임식에서 "국민을 위한 경찰"을 외친 조 청장은 효율과 성과를 강조한 정책들을 연거푸 내놨다. △신속한 보고체계 확립 △범죄예방 활동 강화 △시도청 단위 병합수사 활성화 등 적은 인원이 많은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의 개선책이 대부분이었다.

최근 시행된 '지역관서 근무 감독·관리체계 개선 대책'이 대표적이다. 경남 하동군에서 40대 여성이 순찰차에 탄 후 36시간 만에 숨진 채 발견된 사건 이후, 지역경찰에 순찰차가 2시간 이상 정차 시 그 사유를 기록하고 무전으로 위치와 업무 상태를 보고하도록 한 것이다. 서울의 한 파출소 A경감은 "야간에 신고나 민원 등이 있어 순찰차가 멈추면 왜 차가 안 움직였는지에 대한 사유를 써내야 한다"고 토로했다.

일선 치안 현장에선 조 청장이 당위성만을 앞세우며 '당근'도 없이 '채찍'만 쓰려고 한다는 비판이 있다. 본청은 "일 열심히 해서 잘해보자는 건데 현장은 불만만 많다"는 인식을 가진 반면, 현장 경찰관들은 "일선 경험이 적은 '본청 나리'들이 책상머리에서 만든 정책"이라며 반발하는 것이다. 마약 범죄, 이상동기 범죄, 대규모 사기, 사이버 범죄 등 각종 치안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본청·지방청 대(對) 경찰서 △경찰서 대 지구대·파출소 △수도권 대 지방 간 인식의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 청장은 이런 지적을 '일부 직원들의 불만' 정도로 치부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불만을 가진 직원이 있을 수 있지만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며 "순찰 시간이 늘면 국민 혜택이 늘어나는데 왜 부정적으로 평가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 파출소 근무 경찰은 "우린 열심히 하고 있는데도, 위에선 여전히 놀고 있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승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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