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이 성소수자인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의 제작사가 일부 시민단체의 항의에 예고편 영상을 삭제했다가 다시 공개하기로 했다. 혐오 문화의 위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동성애자 남성과 이성애자 여성이 동거하며 각자의 사랑을 찾아가는 여정을 다룬 이 드라마는 이달 21일부터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에서 방영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OTT 특화콘텐츠 제작 지원작’에 선정돼 제작한 드라마다.
주인공 남성이 동성 연인과 대화하거나 입을 맞추는 장면 등이 포함된 예고편이 유튜브와 포털사이트에 지난 7일 공개됐다. 동성애 혐오자들이 “동성애를 미화하고 조장한다”며 문체부와 티빙 등에 항의 전화를 하자 제작사는 12일 모든 예고편을 비공개 처리했다.
소설 원작자이자 드라마 각본을 맡은 박상영 작가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모 단체에 좌표 찍히고 관련 부서 민원 폭탄 들어간 덕분에 공식 예고편을 모두 내리게 됐다”며 “부아가 치밀어 밤새 한숨도 못 잤다. 혐오의 민낯은 겪어도 겪어도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고 토로했다. 2019년에 나온 원작 소설은 미국을 포함해 15개국에서 번역 출간됐고 2022년 세계 3대 문학상인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2023년 아일랜드 더블린 문학상 후보로 올랐다. 한국에선 10만 권 이상 팔렸다.
논란이 커지자 제작사는 "예고편을 16일부터 다시 공개하겠다"고 물러섰다. "드라마 본편 심의가 청소년 관람불가로 나와 예고편도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의 재심의를 받기 위해 일시적으로 비공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예고편은 OTT 자체등급분류를 이미 받은 상태였고, 영등위 심의를 위해 비공개할 필요도 없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본방송 내용을 보지도 않고 예고편만 보고 압박을 가하고 제작사가 이에 순응해 삭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결정으로 혐오 문화를 더 조장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원작이 같은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이달 1일 개봉 후 보름 만에 52만여 명의 관객을 모으며 흥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