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무 밀친 일출, 벼랑 타는 단풍… 새벽 댓바람에 그 산에 오른 이유

입력
2024.10.1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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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금산 보리암과 독일마을

경남 남해는 산과 바다, 해변과 마을이 어우러져 계절마다 독특한 풍광을 빚는다. 그중에서도 제일은 금산 보리암이다. 오래전 기억을 더듬자면 바위 벼랑에 매달린 절간은 어떻게 생겼는지 가물가물한데, 금산산장 마당에서 내려다본 상주해변과 쪽빛 바다의 윤슬은 어제 일처럼 반짝거린다.

산도 절도 아침 노을에 물들다, 금산 보리암 일출

지난 4일 이번엔 한낮이 아닌 새벽 어스름에 금산에 올랐다. 일출을 보기 위해서다. 큰 부담 없이 새벽 산행을 계획한 건 높이(705m)에 비해 힘이 거의 들지 않기 때문이다. 능선 부근까지 도로가 나 있고, 마지막 주차장에서 보리암까지는 약 1㎞, 30분 잡으면 느긋하게 닿을 수 있다. (상부 주차장이 차면 산 아래 주차장에 차를 대고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아직 어둑한 시간이라 고요하게 그리고 조금은 외롭게 일출을 감상할 줄 알았다. 게으른 여행자의 예상은 빗나갔다. 평일인데도 약 50대를 댈 수 있는 주차장에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발길을 재촉하는 여행자의 뒷모습이 하나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입시철이 다가오는가 보다.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 여행객이 많은 건 예상 밖이다.


새벽 댓바람부터 산을 오르는 이들의 목적지는 대부분 보리암 앞마당의 해수관음상이다. 해발 681m 바위 절벽에 둥지를 튼 보리암은 양양 낙산사, 강화 보문사와 더불어 전국 3대 관음도량이라 자랑한다. 불교에서 관음(觀音)은 세상의 소리를 듣는 보살이다. 그러니까 보리암은 살아 있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는, 소위 ‘기도발’을 잘 받는 암자다. 간절한 마음, 기도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사찰은 신라 신문왕 3년(683) 원효가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보광사로 개창했는데, 조선시대에 ‘깨달음의 길로 이끌어 준다(菩提)’는 뜻의 보리암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암자 입구에 도착하니 동쪽 하늘이 붉은 기운을 머금고, 까마득한 발아래에 해안선 윤곽이 서서히 드러난다. 검푸른 바다에 정박한 배들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옛사람들은 고기잡이 배가 등불이나 횃불을 밝히고 항구로 드나드는 모습을 빗대 ‘어화(漁火)’라 했다. 삶의 멋과 여유가 함축된 표현이다. 남해 앞바다에 정박한 배는 어선이 아니라 거대한 상선이거나 화물선이다. 대개 여수화학단지나 광양제철이 목적지이니 현대판 어화다.



일출 산행의 종착점은 보리암이 아니라 상사바위다. 암자를 지나 서쪽 산등성이로 약 600m 더 가는 곳이다. 짧지만 바위 능선을 따라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니 20분가량 잡아야 한다. 상사바위 전망대에 도착하니 어둠에 잠긴 보리암 오른편 바다에 일출이 감지된다.

수평선에서 말쑥하게 떠오르는 해를 볼 줄 알았는데 복병이 생겼다. 산등성이를 넘은 운무가 끊임없이 바다로 밀려든다. 강렬한 햇빛이 구름을 밀어내는가 싶으면 다시 솟구치고, 태양을 삼킨 구름이 또다시 햇살에 부서진다. 해와 구름의 밀고 당기기가 계속되는 사이 금산엔 붉은 단풍이 들었다. 하얀 바위도 푸른 숲도 번지는 붉은 기운을 한껏 흡수해 황금색으로 변했다. ‘비단을 두른 산(錦山)’이라는 은유가 눈앞에 생생하게 구현되고 있었다.




전망대가 설치된 상사암에는 누구나 상상하듯 남녀의 간절한 사랑이야기가 전해오는데 아무래도 나중에 덧붙여진 듯하다. 조선 선조 때 조겸의 기록에 의하면 속세와의 인연을 버리지 못한 상사자(相思者)가 오르는 것을 금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이곳 전망이 이 세상 풍광이 아니라 해석해도 될 듯하다.

금산에는 상사암 외에도 보리암 뒤편에 웅장하게 솟은 대장봉과 형리암, 무지개를 닮았다는 쌍홍문, 아홉 우물에 빗댄 구정암, 불가의 깨달음을 비유한 화엄봉, 진시황과 아들의 전설이 깃든 부소암 등 기암괴석이 무수하다. 예부터 내로라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70여 곳 바위에 선조들이 남긴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성계가 100일 기도 후 조선 건국의 꿈을 이루었다는 ‘이태조기단’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돌아오는 길에 보리암과 상사바위 사이에 위치한 금산산장에 다시 들렀다. 이제 파전과 막걸리는 팔지 않지만, 컵라면 하나 시켜놓고 내려다보는 풍광만은 변함이 없다. 가파르게 흘러내린 산자락 아래 부챗살처럼 펼쳐진 들판과 부드럽게 휘어진 상주해수욕장에 아침 햇살이 부서지고 있었다.

남해의 풍경에 녹아든 독일마을

제주 올레길처럼 남해에도 ‘바래길’이 있다. 본선 16개를 비롯해 4개 지선과 섬 코스를 합해 총 256㎞로 구성된다. '바래'는 해산물 채취 작업을 일컫는 남해 토속어다. 가족의 먹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바닷물이 빠지는 물때에 맞춰 갯가에 나가 조개, 고둥, 파래, 미역을 캐고 따던 남해 어머니의 삶의 체취를 따라가는 길이다.

금산 동쪽 삼동면에는 남해바래길 7코스 ‘화전별곡길’이 조성돼 있다. 물건마을에서 출발해 독일마을과 편백숲 임도를 거쳐 천하마을까지 연결되는 약 17㎞ 걷기길이다. 시간이 부족하다면 일정 구간 차로 이동하며 남해의 어촌과 이국적 풍광, 특색 있는 음식을 두루 맛볼 수 있다.


시작은 물건리방조어부림이다. 팽나무, 상수리나무, 이팝나무, 느티나무, 푸조나무 등 40여 종 낙엽활엽수가 약 1㎞ 해안을 빼곡하게 감싸고 있다. 염해로부터 바닷가 논밭을 지키려는 지혜의 산물이다. 300년이 넘는 노거수 2,000여 그루 사이로 산책로가 조성돼 있어 숲과 바다 산책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역사가 오래된 물건마을 뒤편으로 하얀 외벽에 주황색 지붕이 이국적인 독일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독일마을은 1997년 남해군이 독일 북부 도시 '노드프리슬란트'와 자매결연을 맺으며 싹을 틔웠다. 2001년 군은 귀국을 희망하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위해 택지를 조성했고, 25가구가 직접 독일에서 건자재를 수입해 전통 독일식 가옥을 지어 마을이 형성됐다. 말하자면 ‘독일풍 테마파크’가 아니라 실제 독일에 살던 교포들의 생활 터전이다.

1963년부터 시작된 파독 근로자는 1970년대에 2만여 명에 이르렀다. 광부 8,395명, 간호사(간호조무사 포함)가 1만371명이 파견됐다. 덕분에 서독으로부터 빌린 약 7,000만 달러의 차관을 대한민국 경제 부흥의 종잣돈으로 쓸 수 있었다. 이국땅에서 어려운 근무 환경과 인종 차별을 견디며 특유의 뚝심과 근면으로 버틴 이들의 애환은 마을 가장 높은 언덕에 자리 잡은 ‘파독역사전시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처음에 이질적으로 보이던 마을은 20년 넘는 세월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남해의 풍광으로 녹아들었다. 관광지로 알려지고 마을이 확장되며 지금은 독일에서 귀국한 교포의 집보다 민박과 상점, 식당, 카페 등이 더 많아졌다. 매년 10월에는 현지의 옥토버페스트처럼 ‘독일마을 맥주축제’가 열린다.

마을로 들어서면 독일 정통 수제 소시지(부어스트), 족발요리(슈바인학센), 돈가스(슈니첼) 등을 판매하는 식당과 독일 빵집이 방문객을 맞는다. 식사와 곁들이는 맥주는 기본이다. 물건마을과 바다를 조망하는 카페 역시 독일식 인테리어로 단장했다. 언덕배기 양쪽으로 펼쳐지는 거리 풍경은 독일의 작은 시골마을을 연상시킨다.




바래길 7코스는 독일마을을 넘어 금산 뒤편 골짜기로 이어진다. 바닷가라는 사실을 망각할 정도로 산이 높고 골이 깊다. 도로는 남해편백자연휴양림까지 이어진다. 바래길 공식 코스는 휴양림을 우회해 산을 넘지만 휴양림 안 임도만 걸어도 신선한 공기를 듬뿍 들이킬 수 있다. 숲속의집 대부분이 편백나무로 빼곡하게 둘러싸여 있다. 산책로 주변에는 키가 큰 낙엽활엽수도 섞여 있어, 10월 말이면 검푸른 편백숲과 어우러진 단풍을 즐길 수 있다.

휴양림 가는 길에 들를 만한 곳으로 양마르뜨언덕과 바람흔적미술관이 있다. 양마르뜨언덕은 남해 최초 양 떼 목장이다. 드넓은 초지를 떠올린다면 실망할 수 있다. 관광객을 위한 체험목장이다. 산책로를 갖춘 아담한 규모의 목초지에서 양 떼가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입장료 5,000원에 건초 먹이 한 바구니가 포함돼 있다. 울타리 안에 들어가서 먹이를 줄 수도 있어 아이들이 건초를 낚아채는 양들과 술래잡기하듯 뛰어다닌다.


인근 바람흔적미술관은 아담한 호숫가에 자리 잡은 갤러리 카페다. 야외 잔디밭 주변에 여러 개의 커다란 바람개비와 앙증맞은 조각작품이 설치돼 있고, 잔잔한 수면에 주변 산자락이 고요하게 비친다. 작품으로 설치한 풍경이 바람이 스칠 때마다 뎅그렁 소리를 내며 정적을 깨운다. 미술관 입장료는 음료수 값으로 대신한다.



남해=글·사진 최흥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