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통신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잇따라 국회를 찾아 노동환경 개선과 대규모 구조조정 반대 목소리를 냈다. 통신 노동자들은 높은 곳에서 고압전력을 다루고 지하 맨홀에 매립된 통신선을 보수하는 등 여러 산업재해 위험에 노출돼 있다.
16일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에서 일하는 전송망 유지보수 하청노동자들은 국회에서 '노동안전보건 실태조사 결과 발표 토론회'를 열었다. SK텔레콤은 국내 1등 통신사이고, SK브로드밴드는 SK텔레콤의 유선망·인터넷 서비스 자회사다.
2차 하청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박상인 SK텔레콤비정규지부 광주목포지회장은 "매일같이 대기 근무를 서고 있지만 회사에선 시간 외 수당을 아끼겠다며 자택에서 대기하라고 한다"며 "주말과 공휴일에도 대기 근무가 많아 잠 한 번 편하게 못 자고 있다"고 증언했다. 이어 "야간에 3시간 이상 일해도 법정 수당을 안 주고 처리 건당 5,000~6,000원만 지급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문제를 제기하면 관행이니 문제 삼지 말라고 했다"고 토로했다. 박 지회장은 "유지 보수 차량이 서로 충돌해 2층 높이에서 떨어진 경우도 있었고 쇠창살에 팔이 관통당한 노동자도 있다"며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인임 정책연구소 이음 이사장은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 하청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작업 위험성 긴급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해당 설문조사에는 61명의 노동자가 참여했다.
한 이사장은 "20년 동안 안전보건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무법천지라고 할 만한 충격적 결과"라며 "24시간, 365일 상시 대기를 한다는 노동자가 40%에 육박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기 시간도 분명 노동시간인데 대기 수당을 안 준다는 응답이 59%였고, 그나마 출동을 하면 수당을 주지만 그마저 못 받았다는 응답이 약 20%였다"며 "통신 대기업이 노동 착취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설문 응답 노동자들은 상시 대기 중 출동 비율이 한 달에 1~4회에 불과하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원청인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의 적극적 역할을 요구했다. 박재범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대기업이 통신 전송망 유지보수 업무를 하청에 재하청을 주는 다단계 하도급으로 운영해서 문제가 더 심각해지는 것"이라며 "근본적으로 매년 1조 원 이상을 버는 통신사가 작업장 안전 확보를 위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협력업체와 상생을 위해 본연의 역할을 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협력업체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KT 통신 노동자들은 회사가 추진 중인 인력 구조조정에 반발했다. KT는 통신망을 운영·관리하는 자회사를 세우고 본사에서 일하던 현장 인력 5,700여 명을 재배치할 계획이다. 이는 KT 전체 직원의 30%에 이르는 규모다. 제1노조인 KT노조는 이에 반발해 14일부터 철야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날 오후에는 KT광화문사옥 앞에서 전국 간부 300여 명이 집결해 구조조정 반대 집회를 열었다. 사측에 우호적인 편으로 알려진 KT노조가 대형 집회를 연 것은 2014년 대규모 구조조정 이후 10년 만이다.
권중혁 KT노조 사무국장은 "회사와 조직 개편 관련 협상을 진행 중"이라며 "기본적으로 일방적 구조조정에 반대한다. 자회사로 이동하더라도 본사와 동등한 처우를 받을 수 있도록 명문화한 약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조는 통신 인프라 인력 구조조정은 통신망 관리 부실로 이어져 2018년 KT 아현지사 화재 사고와 같은 통신 장애가 재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제2노조인 KT새노조는 15일 국회에서 구조조정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노조는 "KT 구조조정은 단순히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국가 통신 인프라의 안정성과 공공성, 수천 명 노동자들의 생계와 직결된 중대한 사회적 문제이니 노동자와 국민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KT 관계자는 "인력 감축을 동반한 구조조정이 아닌 효율화가 필요한 일부 직무와 인력에 대한 재배치를 추진한 것"이라며 "고용 안정성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해 직원 본인의 선택에 기반한 재배치를 추진하고 해당 인력에게는 합리적 수준의 보상 기회를 줄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