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삼전) 주가는 반도체 업황에 따라 수년에 걸친 주기적 등락 사이클을 그려왔다. 그럼에도 2018년 액면분할 이후 전반적 우상향(장기적으로 가격이 올라가는) 추세가 흔들리지는 않았다. 이번엔 다를지 모른다는 우려가 증시에 파다하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기업 삼전에 투자한 국민 투자자들은 지금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골짜기 앞에서 유례없는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있다.
삼전 주가의 전반적 우상향은 기업에 대한 신뢰, 성장에 대한 기대, 미래에 대한 자신감 등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 바탕엔 무엇보다 삼성의 경영과 기술력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자리했다. 하지만 지금, 삼전을 향한 국민적 기대와 신뢰, 자신감은 그 어느 때보다 크게 흔들리고 있다. ‘초격차 기술력’에 대한 믿음이 훼손됐고, 뚜렷한 혁신이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경영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 삼전 불안감은 한국경제의 미래에까지 예사롭지 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지난 9월 모건스탠리가 ‘겨울이 다가온다(Winter Looms)’ 보고서를 통해 삼전과 SK하이닉스 목표주가를 불과 3개월 만에 각각 27.6%, 53.8%나 후려쳤을 때만 해도 음모론이 만만찮았다. D램 경기 하락까지는 그렇다 해도, 내년도 공급계약까지 마치고 주문생산 방식으로 진행되는 HBM에 대해 공급과잉론을 내세워 목표주가를 반토막 낸 건 아무래도 지나쳐 보였다.
그럼에도 중요한 현실은 전반적으로는 모건스탠리의 야속한 ‘삼전 겨울론’에 대해 누구도 자신 있게 공박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2030년 대만 TSMC를 제치겠다던 파운드리(위탁생산)에선 되레 TSMC와의 격차가 커지고 있다. 삼전이 시스템반도체 설계사업부인 시스템LSI까지 품고 있는 바람에 자사 설계기술 유출을 꺼리는 해외 고객사들이 삼전 파운드리를 외면하고 파운드리만 하는 TSMC에 쏠리고 있다는 지적 등이 나오지만 해법은 묘연한 상황이다.
메모리 부문도 난국이다. D램 경기 하락과 별개로 고대역폭메모리인 HBM에서 SK하이닉스 등에 뒤처지고, 범용 메모리에서 CXMT 등 중국 업체의 추격이 턱밑까지 닥친 것도 장기 전망을 어둡게 한다. 삼전이 차세대인 ‘HBM4’에서 초격차 기술로 상황을 반전시킬 거라는 기대도 있지만, 그동안 HBM 개발의 난맥상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9회말 만루홈런 같은 얘기라는 지적이 다수다.
물론 삼전 주가는 기술적으로라도 반등이 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삼전이 직면한 구조적 위기를 극복하는 건 여전히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만만찮다. 더 심각한 문제는 위기를 부른 삼전 내부요인 외에, 반도체 수요를 HBM으로 순간이동시킨 AI혁명, 공급망 이슈에 따른 국제분업체계의 격변, 중국 기술력 부상 등 외부의 구조적 요인들은 우리 핵심산업 전반에도 성쇄를 가를 핵심변수로 영향력을 본격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적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현대차만 봐도 그렇다. 현대차는 지난 8월 발표한 미래전략 ‘현대 웨이’를 통해 ‘자율주행차 파운드리’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애플과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이행할 차체 위탁생산 사업을 강화하겠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이를 사업다각화 전략으로 본다. 하지만 달리 보면 세계 3위 완성차 메이커로 부상한 현대차조차 자체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비롯한 완성차 일관생산체제를 유지하기 어려울 상황에 대비해 절박한 ‘플랜B’를 가동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AI와 공급망, 중국, 보호무역 등 조만간 나라의 흥망을 좌우할 치명적 변수들이 해일처럼 들이닥치고 있는 게 지금의 상황이다. 정부는 물론, 정치권도 ‘당파싸움’에 몰두할 때가 결코 아니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