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회장 구속 사태를 겪은 SPC그룹이 임병선 전 신세계백화점 부사장을 그룹 대표이사로 14일 내정했다. 인사 전문가인 임 대표는 수장 공백으로 어수선한 회사 분위기를 안정시키는 데 힘쓸 전망이다. 특히 그가 민주노총 탈퇴 강요 건으로 갈등을 빚은 허영인 SPC그룹 회장과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노동조합 간 깊은 감정의 골을 풀어낼지 주목된다.
SPC그룹은 이번 주 중에 이사회를 열어 임 대표를 최종 선임하고 인사, 법무, 대외협력, 홍보, 컴플라이언스(준법 경영) 분야를 맡길 예정이다. 이는 3월 초 4·10 총선에 출마한 남편을 돕겠다는 이유로 취임 1년 만에 갑작스레 물러난 강선희 전 대표의 업무로 주로 회사의 바깥 살림을 책임진다.
임 대표는 또 SPC삼립, 파리크라상 등 SPC그룹 계열사 사장단 협의체 'SPC WAY 커미티'의 의장도 수행한다. 4월 취임 이후 임 대표 부문까지 총괄해 SPC그룹 대표를 이끌던 도세호 대표는 안전 경영·상생 협력 분야만 관장한다. SPC그룹은 기존에도 투톱 체제로 수뇌부를 꾸려왔다. 기업 지배구조 최상단에 있는 지주사 대표와 비슷한 SPC그룹 대표는 허 회장을 가까이에서 돕는다.
업계에서는 임 대표 내정 시기와 그의 경력에 주목하고 있다. 우선 그는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노조에 대한 민주노총 탈퇴 강요 혐의로 4월 초 구속됐던 허 회장이 9월 초 보석으로 풀려난 후 나온 첫 최고위급 인사다. 허 회장이 경영 일선에 돌아오지 않았지만 물밑에서 이번 선임에 관여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임 대표가 인사통인 점도 눈에 띈다. 그는 신세계그룹 전략실 인사총괄 부사장을 지내는 등 경력 대부분을 인사 분야에서 쌓았다. 그러다 보니 SPC그룹은 임 대표에게 원래 업무인 대외 활동에 더해 조직 안살림인 인사까지 맡겼다. 직전 대표 체제까지만 해도 인사는 강선희 전 대표가 아닌 SPC 근무 경력 30년인 황재복 전 대표 소관이었다. 황 대표 역시 허 회장과 같은 혐의로 구속됐다가 8월 말 보석 석방됐다.
임 대표는 장기를 살려 허 회장 구속 등으로 불안정했던 조직을 추스르는 데 공을 들일 전망이다. 허 회장 등 경영진과 파리바게뜨 노조 사이에서 소통 창구 역할을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SPC그룹이 최근 강화한 대외 업무 인력과 함께 허 회장의 사법 리스크를 완화하는 역할도 맡는다. SPC그룹은 7월 국회 대관 담당 임원으로 여선웅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을 뽑고 홍보 총괄 부사장을 교체했다.
SPC그룹 관계자는 "신임 대표는 조직 문화의 변화·혁신을 이끌고 계열사와 소통을 강화해 '글로벌 그레이트 푸드 컴퍼니'를 향한 그룹 비전 실현에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