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마비' 일단 피했지만… 여야 ①재판관 이념 지형 ②탄핵·상설특검 심리 두고 줄다리기

입력
2024.10.15 07:00
여야 헌법재판관 후임 추천권 두고 평행선
이진숙·손준성 탄핵심판 등 현안 심리 산적
野 의석수 원칙 고수…공백 장기화 시 불리한 與

국회 추천 몫 헌법재판관 3명이 17일 퇴임을 앞두고 있지만, 여야가 후임자 추천권을 두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헌재가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의 가처분 신청을 이날 인용하면서 초유의 '마비' 사태는 일단 막았지만, 헌법재판관 지형 구성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첨예해 임명까진 가시밭길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與 "1명씩 추천" VS 野 "의석수대로"

이종석 헌법재판소장과 이영진·김기영 헌법재판관 임기는 사흘 뒤 종료된다. 그러나 여야는 아직 후임자 인선 절차의 첫발조차 떼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관례대로 여야 1명씩 추천하고 나머지 한 명은 합의로 추천하자고 제안했지만, 민주당은 의석수에 비례해 야당이 2명을 추천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국민의힘 원내 핵심 관계자는 14일 한국일보에 "협의하고 있지만 결론이 나지 않는 상황"이라며 "(야당이) 20여 년 동안 해온 대로 안 하겠다고 주장하고 있어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현행 헌재법 제23조 제1항에 따르면 재판관 9명 중 7명 이상이 출석해야 사건을 심리할 수 있다. 다행히 헌재가 이 조항에 대한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이 위원장의 가처분 신청을 이날 인용하면서 인선 지연으로 인한 마비 사태는 막았다. 다만 지금으로선 심리 정족수만 융통성을 열어둔 상황이라, 정상화까진 갈 길이 멀다. 여야가 최대한 빠르게 합의해도 인사청문회 등 임명 절차까진 최소 한 달 이상이 걸린다. 헌재에는 8월부터 직무가 정지된 이 위원장과 손준성 검사장 탄핵소추 사건, 윤석열 대통령 탄핵 청문회 관련 권한쟁의심판 등 주요 정치 현안에 대한 사건이 산적해 있다.

헌재 구성에 정치적 셈범… '동상이몽'

여야의 기싸움에는 정치적 셈법이 깔려 있다. 3명이 퇴임하면 남은 재판관 6명은 이념 지형에서 진보·중도·보수가 각각 2명씩 균형을 이룬다. 여기서 민주당이 2명을 추천하게 되면 진보 성향 비중이 높아져 야당이 추진하는 각종 탄핵안에도 힘이 실릴 수 있는 구도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이날 "의석수에 따라서 하는 게 원칙"이라며 "정 안 되면 2명만 먼저 임명을 강행하고 대통령이 거부하는 방안도 있다"고 했다. 1994년 당시 민주자유당(158석)이 재판관 2명을 추천한 전례도 있고, 2018년 국회 추천 몫도 의석수에 맞춰 배분한 결과였다는 게 근거다.

반면 여당은 마음이 급하다. 헌재 기능이 제한되면 야당의 상설특검 추진 등에 대해 권한쟁의심판이나 가처분 신청 등으로 대응하려던 전략에 차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원내 관계자는 "야당은 본인들이 추진하는 탄핵안들에 대한 심판을 늦춰 행정 공백, 재판 공백까지 만들겠다는 의도"라며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공백으로 둘 수 없는 노릇"이라고 지적했다. 여당은 여야 1명씩이라도 먼저 추천해 임명하는 방안 등을 고려하고 있다.

법조계에선 헌재 정상화를 위한 조치가 이어지고 있다. 이호선 국민대 법과대학장은 13일 헌재 심리 정족수(7명)를 규정한 헌재법 제23조1항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 위원장도 10일 해당 조항에 대한 위헌 확인 헌법소원과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다수당이 힘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추천권을 악용하는 것처럼 보인다"며 "정치권이 당리당략으로 헌재를 이용해선 안 된다"고 경계했다.

김소희 기자
우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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