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노동개혁 추진과 노동 제도 개편을 위해 만든 각종 회의체들이 수천만 원씩 예산을 쓰고도 결론을 비공개하거나 국회가 질의하자 그제야 늑장 공개해 논란이다. 내놓은 보고서들도 '노사정 사회적 대화'에 쓰이지 못해 사실상 무용지물 신세가 됐다. 애초 노동계를 배제한 채 일방통행식 제도 개편을 추진하려 한 게 패착이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1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3개 회의체(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 자문단,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연구회, 초고령사회 계속고용 연구회)와 고용노동부 3개 회의체(상생임금위원회, 중대재해처벌법령개선TF, 산재보상제도개선TF)에 사용 예산, 회의 현황, 결과 공개 여부를 질의한 결과, 6곳 중 활동이 종료된 곳이 4곳이지만 사회적 대화에 참고 자료로 쓰인 결과 보고서는 0건이었다.
회의체들은 출범 때부터 노사 당사자나 추천자 없이 정부가 뽑은 전문가로만 구성돼 비판을 받았다. 위원들이 주로 보수·친정부 성향 학자라 '편향적'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지난해 11월 사회적 대화가 복원됐지만 노동계 참여자인 한국노총이 결론 보고서들에 대해 '활용 불가' 방침을 명확히 한 이유다.
지난해 2월 경사노위에서 연달아 출범한 '노사관계 자문단'과 '이중구조 연구회'에는 예산이 각각 5,549만 원, 5,798만 원 사용됐다. 두 회의체는 당초 지난해 상반기 중 논의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었으나 같은 해 7, 8월 정책연구보고서 작업을 마치고도 비공개로 일관했다.
강득구 의원 질의에 경사노위는 지난달 24일 뒤늦게 홈페이지에 보고서들을 올리면서 "향후 관련 의제 논의 시 요청이 있다며 참고 자료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두 회의체 모두 노사 참여가 없었고, 특히 노사관계 자문단은 '노동자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같은 경영계 숙원을 주요 의제로 삼은 만큼 앞으로도 노동계가 활용에 동의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고령자 고용, 정년연장 문제를 다룬 '초고령사회 계속고용연구회'에는 2,719만 원이 쓰였다. 경사노위는 연구회 논의 결과를 올해 6월 발족한 '인구구조 변화 대응 계속고용위원회'에서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구회에 참여한 전문가 중 4명은 계속고용위에도 합류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노사가 참여하지 않은 연구회 결과는 위원회 논의에 반영할 수 없다"며 활용 가능성을 일축했다.
고용부 산하 회의체들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 논의 결과를 아예 공개하지 않거나 결론도 못 내고 흐지부지된 상태다.
'대기업·정규직 연공제'를 해체해 '성과 중심 임금체계'를 마련한다며 지난해 2월 출범한 상생임금위원회는 10회 회의 후 그해 12월 활동을 마쳤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발표를 하지 않았다. 예산은 3,299만 원(고용부·한국노동연구원 분담)이 쓰였다. 위원회에 법적 근거가 없고 회의록도 작성하지 않아 '밀실 운영'이라는 비판을 받았는데, 결과도 '깜깜이'다. 고용부는 논의 내용을 경사노위에서 활용하겠다고 설명하지만 노동계 반대로 쉽지 않을 전망이다.
50인 미만 사업장 확대 시행을 약 1년 앞두고 생긴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태스크포스(TF)'는 아예 회의 횟수, 사용 예산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회의 종료 상태가 아니라는 게 이유인데, TF 참여 위원에 따르면 마지막 회의는 지난해 8월이었다. 보고서도 내지 못하고 '무기한 휴업' 중인 셈이다.
이처럼 노동 관련 회의체의 불투명한 운영, 편향적인 구성에 대한 지적이 반복됐음에도 고용부는 올해 1월 또다시 '산재 카르텔'을 없애겠다며 산재보상 제도개선TF를 노사정 추천 없이 구성했다. 소속 위원 명단도 비공개하다가 지적이 이어지자 뒤늦게 공개했다. 고용부는 TF 논의가 아직 진행 중이며, 현재까지 2,825만 원을 썼다고 밝혔다. 다만 결론이 나와도 노동계나 야당 주도 국회를 설득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강득구 의원은 "노동정책은 정부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로 진행할 것이 아니라 노사정 대화를 통해 풀어가야 한다"면서 "윤석열 정권에서 경사노위는 협의 기구가 아닌 정권의 입맛에 맞는 결론을 내는 연구단체로 전락했으나 지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사회적 대화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