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윤슬이 반짝이는 강원도 고성군 아야진 앞바다. 검은 잠수복을 입은 채 소형 보트에 타고 있던 정치인이 바다로 주저 없이 뛰어들었다. 공기통과 웨이트벨트(부력 조절을 위해 납 등을 넣어 만든 벨트) 등 30㎏ 장비를 걸치고, 한 손에는 그물 자루를 쥐었다. 김재원 조국혁신당 의원은 이날 동료 다이버 4명과 함께 입수해 바닷속 쓰레기를 치웠다. 25~30분간 자루에 담아 나온 쓰레기는 약 25㎏. 주로 인근 갯바위의 낚시객들이 버린 낚시대와 봉돌, 찌, 루어 등이 많았다. 같은 시간, 다른 봉사자들은 인근 방파제에서 버려진 쓰레기를 주웠다.
가수 '리아'로 알려진 김 의원은 저작권법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대중문화 전문가다. 현재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이기도 하다. 해양 쓰레기 등 바다 오염 문제와는 접점이 없어 보이지만, 김 의원은 15년 차 다이버이자 해양 정화 활동가다. 2020년에는 동료들과 유명인 해양청소봉사단인 '코보(COVO)'를 만들어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연예인과 운동선수, 아나운서, 인플루언서 등 선한 영향력을 가진 이들이 바다 쓰레기의 심각성을 알려보자는 취지였다.
김 의원의 이날 봉사활동도 코보 등 해양 환경단체들이 뭉쳐 만든 '바다살리기네트워크' 캠페인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이 단체는 국제 연안 정화의날(9월 21일)을 맞아 한 달간 전국 바다에서 쓰레기를 집중적으로 수거하고 있다. 김 의원은 “지난 3월 비례대표 후보가 된 이후 하루도 쉰 적이 없고 10월에는 국정감사로 특히 바쁘지만, 바다에서 쓰레기 치우는 건 나에게도 치유의 시간"이라며 봉사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해양 쓰레기 실태는 뭍에서는 관찰할 수 없기에 바다에서 직접 봐야 심각성을 절감하게 된다. 김 의원은 "스쿠버 다이빙을 익히고 바닷속에 들어가면 세 단계에 걸쳐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바뀐다"고 했다. 처음에는 호흡 등 기본 기술을 익히기 바빠 주변이 잘 보이지 않다가, 이 단계를 지나면 아름다운 바다 생태계가 조금씩 보이고, 더 시간이 지나면 곳곳에 널브러진 쓰레기가 눈에 띈다는 설명이다.
김 의원은 "한국일보의 '추적 : 지옥이 된 바다' 시리즈는 내가 본 우리 바닷속의 심각한 쓰레기 오염 상황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며 "우리가 너무 예뻐하는 해양 생물들이 쓰레기 탓에 고통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누구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들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해양 폐기물 및 해양 퇴적물 관리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주로 그물 등 폐어구 쓰레기를 규제하는 데 초점을 맞춘 기존 법령을 고쳐, 다양한 해양 쓰레기 문제에 실효성 있게 대응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을 계획이다.
김 의원이 최근 가장 걱정하는 문제는 '잘피 숲 실종 사건'이다. 수심 5m 이하 연안에 사는 해조류인 잘피(거머리말)는 산소를 만들고, 지상의 숲보다 3배 많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지구가 뜨거워지는 속도를 낮추는데 꼭 필요한 천연 자산인 셈이다. 김 의원과 함께 해양 정화 활동을 해온 윤재준 오션아카데미 대표는 "고성 바다에 잘피를 먹이 삼는 성게가 크게 늘어 잘피숲이 사라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과거에는 해녀들이 성게를 잡아 일본에 수출해 돈을 벌었는데 최근에는 엔저 현상 탓에 수출길이 막혔고 해녀들도 고령화해 성게를 잡지 않아 개체수가 크게 늘었다.
실제 김 의원과 동료 다이버들이 이날 바닷속에 들어가 보니 검은 성게들이 바위에 빼곡히 붙어 있었다. 성게들은 잘피 뿌리 등을 뜯어 먹어 죽게 만드는데 이렇게 되면 물고기가 산란할 장소가 사라진다. 이 탓에 치어들도 줄어들 게 된다. 현실을 목격한 다이버들이 안타까운 마음에 성게를 잡아 나오고 싶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비어업인이 유해어종이 아닌 해양 생물을 채취하는 행위는 현행법상 불법이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바다 살리기에 뜻이 있는 다이버들이 전국에 매우 많다"며 "이들이 해양 쓰레기를 치우며 성게도 잡아 어민들에게 넘기면 서로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아 관련 입법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해양 쓰레기는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임에도 정작 정치권의 관심은 크지 않다. 유권자들의 표를 얻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 탓이다. 김 의원도 이 사실을 모르지 않지만 각오는 남다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목표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 옳은 일이라면 정치인으로서 앞장서야 하고 그러다 보면 알아봐주시는 분들도 생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