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내각

입력
2024.10.15 16: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7일 집권플랜본부를 가동한다고 밝혔다. 이재명표 정책을 연구하고 인재 영입 등을 통해 집권을 위한 장기적·구체적 그림을 구상하겠다는 것이다. 본부를 이끌 김민석 최고위원은 의료대란과 김건희 여사 논란 등 윤석열 정부의 국정 난맥을 열거하며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집권당보다 책임 있게 행동하겠다"고 강조했다.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둔 이재명 대표의 섀도 캐비닛(그림자 내각)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 그림자 내각은 야당이 집권을 대비해 각료 후보들을 미리 내세우는 예비 내각을 뜻한다.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등 양당제가 발달한 영연방 국가에서 정착된 제도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영국에선 총선을 통해 정권이 바뀌면 바로 그다음 날 새 총리가 취임한다. 야당은 그림자 내각을 공개함으로써 언제든지 국정을 맡을 준비가 돼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7월 노동당 당수로서 14년 만에 집권한 키어 스타머 총리도 그림자 내각 구성원을 그대로 기용했다.

□ 대통령제를 채택한 우리나라에선 통상 대선 후 2개월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간에 조각이 이뤄진다. 이례적으로 2017년 대선에서 그림자 내각의 필요성이 제기된 적이 있다. 탄핵에 따른 대통령 궐위 상태에서 열린 대선인 만큼 당선 다음 날부터 대통령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 터라 후보 능력은 물론 공약 등을 추진할 예비 내각을 사전 공개해 검증하자는 취지였다. 가장 유력한 주자였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호응했으나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역풍을 의식해 이행되지는 않았다.

□ 최근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의 친분을 과시하고 있는 한 정치 브로커가 "(김 여사가) 인수위에 와서 사람들 면접을 보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한남동 라인' 등 대통령 주변 인사들에 대한 구설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그림자 내각을 전향적으로 검토해 봄직하다. 전 부처까진 아니어도 외교, 국방, 경제 수장 정도를 미리 공개하면 어떨까. 인수위 과정의 논공행상을 차단할 수 있고 무엇보다 사람을 쓰는 대선주자의 안목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김회경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