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은 우리나라 토착신앙이지만, 무속인이 국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신내림을 받은 '푸른 눈의 무당'도 있고, 미국으로 귀화해 활동하는 무당도 있다.
본보는 해외에서 한국 무속이 어떻게 인식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미국과 유럽에서 활동하는 무당 3명을 인터뷰했다. 그들은 기성 종교와 다른 믿음 체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하면서, 일부는 정신 의학을 접목해 치료 도구로서의 무속 행위를 연구하고 있었다.
독일인 안드레아 칼프(50)는 200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2-2호 보유자였던 만신(무당을 높여 부르는 말) 김금화로부터 신내림을 받았다. 칼프는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샤머니즘 콘퍼런스에 참석했다가 김씨를 만났고, 그로부터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다. 한국에서 내림굿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칼프는 독일로 돌아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예전의 삶을 계속하려 했다지만, 결국 한국으로 와서 신내림을 받았다. 칼프는 "인생 내내 스스로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느꼈다. 미래를 예견하는 꿈을 꿨고 여러 건강 문제를 겪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칼프의 신내림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줬다. 스위스인 헨드리케 랑에(54)는 사물놀이를 통해 한국 문화를 처음 접했다. 자연스레 진도씻김굿 등 무속 의식에도 관심을 갖게 됐지만, 무속 신앙 자체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라디오에서 독일 여성이 한국에서 신내림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고, 2008년 가족을 자살로 잃게 되자 칼프에게 연락을 취했다. 스케이트를 타다가 다치는 등 자신에게도 안 좋은 일이 잇따라 생기자 랑에는 김씨를 찾아가 내림굿을 받았다.
채희아(84)씨는 서울대 음대에서 국악을 전공한 뒤, 미국 유학 중 신병을 앓아 한국으로 귀국해 1981년 김금화로부터 신내림을 받았다. 채씨는 "무용 민속학 과정에서 샤머니즘을 공부할 때는 무당으로 입문할 생각이 없었지만 신령이 나를 선택했다. 김씨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수차례 신병을 앓았다"고 말했다.
채씨는 신병을 한국 사회의 부조리와 연결해 해석하기도 했다. 그는 "신병은 영적인 몸이 영적 창의력에 굶주리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믿는다"며 "나처럼 1940년생 여성들은 억압적인 유교 사회에서 큰 고통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당은 모든 전통적인 규칙과 고정관념을 깨뜨린다"며 "여성 무당이야말로 진정으로 해방된 첫 번째 여성"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해외에서 무당으로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을까. 독일과 하와이에서 활동하는 칼프는 유럽과 미국 문화에 맞게 무당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신령뿐만 아니라 유럽과 하와이 신들과도 연결될 수 있다"며 "전 세계 고객들을 대상으로 점술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칼프는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누적 고객이 4만6,000명이 넘었다고 적었다.
칼프는 현대 의학과 협업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오스트리아에 있는 정신병원에서 중독 환자를 대상으로 샤머니즘 치료를 적용하는 과학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며 "샤머니즘과 기존 치료 방법을 병행했을 때 중독 치료에 미치는 효과를 탐구한다"고 말했다. 칼프는 2021년 신경외과 의사와 함께 영적 치료법을 제시하는 책(샤먼 테라피)을 쓰기도 했다.
'스위스 무당' 랑에는 스위스에서 '심리운동 치료사'로 일하며 한국 사물놀이 교육과 공연을 병행하고 있다. 가족과 지인들을 위해 의식을 행하거나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무당 일도 계속하고 있다. 그는 "한국 무당이 하듯이 점사를 봐주지는 않는다"면서도 "누군가와 상담할 때 영적 메시지를 받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는 그 메시지를 전해준다"고 말했다.
채씨는 한국 무당에 뿌리를 둔 '글로벌 샤먼'을 자처하며 공연 위주로 활동을 해왔다. 그는 신내림 이후 뉴욕 등 미국 전역과 독일 등에서 샤머니즘 의식과 관련된 무용 공연을 했고, 대학에서 샤머니즘과 한국 전통 음악을 가르치기도 했다. 채씨는 "점을 치거나 굿을 하지는 않는다"면서도 "배우, 예술가, 의사, 환자, 기업인, 의사 등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때 영적 치유 차원에서 찾아온다"고 밝혔다.
해외에서 무속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인식의 차이가 크지만, 대체로 부정적 인식이 크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칼프는 "어떤 사람들은 무속을 신앙으로 보지만, 어떤 사람들은 단순 공연으로 본다"며 "고객 대부분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나를 찾아온다. 무속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인식이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채씨는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제도화된 종교보다는 순수한 영성을 찾고 있다"면서도 "샤머니즘에 열광적인 사람도 있지만, 회의적인 사람도 매우 많다"고 전했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
팀장 : 이성원 기자
취재 : 손영하·이서현 기자, 이지수·한채연 인턴기자
사진 : 하상윤·정다빈 기자
영상 : 김용식·박고은·박채원 PD, 김태린 작가, 전세희 모션그래퍼, 이란희·김가현 인턴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