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을 겨냥해 “대통령실 인적 쇄신"을 요구했다. ‘김건희 여사 리스크’와 관련한 발언을 이어가더니 급기야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인사권으로 수위를 끌어올린 것이다. 10·16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정권에 실망한 민심을 달래면서 이후 마련될 윤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승부수로 보인다.
한 대표의 초강경 발언은 '양날의 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16일 선거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낸다면 ‘할 말은 하는 대권주자’ 입지를 다지겠지만, 패배하면 ‘한동훈 책임론’의 역풍이 거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여권 관계자는 13일 “재보궐 선거 결과에 따라 여권의 권력 지형이 크게 흔들릴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한 대표는 전날 부산 금정구청장 선거 지원유세 현장에서 “김 여사에 대한 국민 우려와 걱정을 불식시키기 위해 대통령실의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 인적 쇄신은 정부와 여당이 민심에 따라 쇄신하고 변화하고 개혁하는 중요한 출발점”이라고도 했다. 대통령실이 김 여사와 관련된 의혹들에 뚜렷한 수습책을 내놓지 못하자 ‘책임자 교체’를 요구한 것이다.
한 대표의 이번 발언은 그간의 ‘정치적 관행’과 거리가 있다. 통상 여권이 대통령 인사 문제에 의견을 전달할 때는 ‘물밑에서, 조용히’ 건의하는 형식을 취해왔다. 인사권자인 대통령을 존중하기 위해서다. 한 대표는 앞서 ‘윤 대통령 최측근 논란’이 제기된 김용현 국방부 장관, ‘뉴라이트 인사’로 지목된 김형석 독립기념관 임명 논란 때는 입장을 내지 않고 침묵했다.
한 대표는 최근 대통령실을 향해 ①김 여사 사과 ②대외 활동 자제 ③국민 눈높이에 맞는 검찰 수사 ④대통령실 인적 쇄신 요구를 쏟아내며 비판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를 두고 ‘김 여사 관련 의혹'을 방치해 여론을 악화시킨 대통령실을 향해 ‘청구서’를 내밀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 대표 측 관계자는 “한 대표가 처음 독대를 요청했던 지난달보다 여론이 더 악화됐다”며 “이제 김 여사의 사과만으로 민심이 달래지지 않기 때문에 모든 처방을 동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친윤석열계는 한 대표의 발언을 두고 “금도를 넘었다”며 격앙된 분위기다. 다만 친윤계에서 “자해적 발언을 삼가야 한다”(윤상현 의원) “비공개로 의견을 내야 한다”(권성동 의원)며 자제를 촉구할 뿐 정작 당사자인 대통령실의 ‘공개 발언’은 없다. 선거 막바지인 상황에서 당정 갈등을 부각시키지 않으려는 고육책으로 보인다.
‘한 대표가 주도하는 선거에 끼지 않겠다’는 해석도 있다. 재보궐 선거에서 패배하면 '오로지 한 대표 책임'이라는 얘기다. 투표율이 낮은 재보궐 선거는 지지층을 격려해 투표장으로 나오게 해야 하는데, 한 대표가 김건희 리스크를 거론하면서 지지층을 실망시키고 있다는 게 친윤계의 불만이다. 친윤계에서는 김기현 전 대표가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상황도 언급된다.
이에 선거 결과와 이후 여론의 향배에 따라 여권의 권력지형까지 요동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한 대표 측 관계자는 “부산 금정 현장에 가보면 정권을 향한 부정적 여론이 체감된다”라며 “여론 악화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온 국민이 알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한 대표가 선거를 잘 치러도 독대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국민들은 피로감을 느낄 것”이라며 “대통령실과의 관계를 잘 풀어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