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강의 문장으로부터 사랑, 존엄, 삶을 지켜나갈 힘을 얻는다"

입력
2024.10.20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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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언 문학평론가·조선대 문예창작과 교수


매일 오후 5시 18분에 맞춰 ‘임을 위한 행진곡’이 흘러나오는 시계탑 건너편, 245개의 탄흔이 남겨진 광주 동구 금남로 ‘전일빌딩245’에 큰 현수막이 걸렸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를 향해 ‘고맙다! 기쁘다!’라고 외치는 내용이다. 이동 중에 택시 기사님은 손님인 내게 “그 어려운 얘기를, 쉽지 않았을 거인디, 나는 오월 얘기하라믄 하질 못해, 그런데 그것을, 참말로 고맙고 대단허죠잉” 하고 말했다.

슬픔의 역사를 품고 살아가는 이들은 기쁜 일이 생겨도 곧바로 기뻐하지 못한다. 기뻐도 되는가, 그 참혹한 시간을 겪고도 기뻐해서 되는가를 스스로 물으며 멈칫거리느라.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은 오래 그렇게 지내온 사람들에게 슬픔이 숙성시킨 기쁨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의 작품이 내내 해왔던 일처럼 상처 입은 이들, 사라진 이들, 소중한 누군가를 떠나보낸 이들, 귀한 무언가를 찬탈당한 이들 모두가 마치 촛불의 반경 가까이로 다가와 기쁨의 온기를 쬐는 순간을 맞이한 듯하다.

무엇보다 온갖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살아가야만 하며 살고자 하는 지금 우리에게 거짓된 장막을 걷으라고, 어둠 속에 잠겨있는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힘이 필요하다고 새삼 요청하는 소식으로 다가오는 것도 같다. 그래서 더욱 감격스럽다. 숙성된 기쁨은 슬픔을 함성의 역사 위에 이어 쓰도록 이끌 것이므로. 조용히 그러나 강력히, 끈질기게.

한강의 작품 속 인물들은 강인하다. 스웨덴 한림원이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로 밝힌 바 있는 한강의 작품 세계가 폭로하는 ‘인간 삶의 연약함’이란 폭압적으로 다가오는 세상에 인간이 그냥저냥 휩쓸리지 않고 그것을 어떻게 감당하는지, 기어이 눈을 뜨고 계속해서 살아가는지를 통해 표현되기에 꺼낸 말이다. 그들은 사랑하는 마음을 지켜내면서 존엄하게 ‘있다.’ “죽음에 가까운 린치를 당하”면서도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밀어올려 상대를 마주 보는 순간”(‘소년이 온다’·213쪽)을 맞이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상처를 품고 나아가는 삶의 곁으로, 묵음으로 이어지는 죽음의 편으로 성큼성큼 다가간다.

전쟁과 학살과 폭력과 참사가 여전한 세상에서 기록될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다면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가 날개를 퍼덕인 것처럼”(‘작별하지 않는다’·325쪽) 살아있고자 하는 존재들의 것임을 일러준다. 한강을 읽는 시간은 이를 이해하는 일의 중요성을 깨닫는 시간이기도 하다. 작가님의 문장으로부터 우리가 끝끝내 사랑을, 존엄을, 삶을 지켜나갈 힘을 얻고 있으니 다시 작가님이 계신 곳으로 ‘파도’와 같은 감사를 보내는 일은 우리 모두의 기쁨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파도가 멀리 나아가기를, “죽은 나무라고 의심했던” “검은 나무가 무성”한(‘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137쪽) 지금 세계를 향해 뻗어나갈 수 있기를. 조용히 그리고 강력히, 끈질기게.





양경언 문학평론가 겸 조선대 문예창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