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14일 취임 4주년을 맞았다. 1999년 회장이 된 아버지 정몽구 명예회장에 이어 2020년 10월 회장에 오른 정 회장은 미래 모빌리티 기업이라는 현대차그룹의 비전을 차분히 준비하면서도 수익성 개선이라는 성과도 거뒀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특유의 리더십으로 현대차그룹을 글로벌 완성차 업계 '빅3' 반열에 올려놓았을 뿐만 아니라 전기차 산업에서 그룹을 '퍼스트 무버'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데도 성공했다. 다만 지정학적 리스크와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 해소, 수소·자율주행 분야 수익성 확보 등은 정 회장에게 남은 과제로 거론되고 있다.
13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현대차 그룹의 합산 영업 이익률은 10.7%로 글로벌 '톱5'(도요타그룹·폭스바겐그룹·현대차그룹·스텔란티스그룹·제너럴모터스(GM)) 완성차 업체 중 가장 높았다. 합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139조 4,599억 원, 14조 9,059억 원으로 반기 기준 사상 최대였고 1분기(1~3월)에는 그룹 합산 영업이익이 폭스바겐 그룹의 영업이익을 넘어섰다.
정 회장이 취임할 때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실적은 2020년 635만 대 판매로 세계 5위였다. 당시 현대차는 매출 103조 9,976억 원, 영업이익 2조3,947억 원을 기록해 전년도(2019년) 실적(매출 105조7,464억 원, 영업이익 3조6,055억 원)보다도 주춤했다.
하지만 정 회장이 이끈 뒤 반등해 꾸준히 성장했고 2022년(684만 대) 글로벌 톱3에 처음 진입하는 괄목한 성과를 냈다. 올해는 730만 대 판매가 예상돼 2위 폭스바겐그룹을 바짝 뒤쫓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의 합산 매출액은 2020년 163조 2,000억 원에서 올해 280조 원(증권가 예상치)으로 불과 4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어날 전망이다.
정 회장의 경영 능력은 제네시스와 기아의 성과에서도 도드라진다. 올해 그룹의 수익성 개선을 분석해보면 두 브랜드의 활약이 눈에 띄는데 둘 다 정 회장의 손길을 거치며 성장 기반을 다졌다. 그는 제네시스 브랜드의 탄생을 이끌었고 그룹 총수에 오르기 전 기아 대표로 시장 수요에 맞춰 레저용 차량(RV) 중심으로의 라인업 재편을 이끌었다. 현대차의 상반기 판매량 중 RV·제네시스 비중은 60% 이상이었고 기아는 같은 기간 주요 시장인 미국에서 RV 판매 비중 78%를 기록했다.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이 친환경차 선두 주자로 입지를 다질 수 있도록 이끌었다. 그는 모빌리티 산업에 닥쳐올 전동화 전환에 대비해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만들었다. 정 회장은 2018년 임직원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내연기관차 시대에는 패스트 팔로어였지만 전기차 시대는 모두 똑같은 출발선에 서 있다"며 "경쟁 업체를 뛰어넘는 성능과 가치로 퍼스트 무버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GMP를 품은 아이오닉5는 2022년 세계 올해의 차에 뽑혔고 2023년 아이오닉6, 올해 EV9이 차례로 세계 올해의 차에 오르며 3년 연속 최고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특히 올해는 친환경차 최대 격전지인 미국에서 상반기 전기차 판매량은 6만 1,883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0.9% 증가했고 시장 점유율은 두 자릿수로 뛰어 테슬라에 이어 '톱2'에 올랐다.
2005년부터 20년 동안 대한양궁협회장을 맡은 정 회장은 투명한 조직 운영, 선수들에 대한 전폭적 지지로 2024 파리올림픽에서 한국 양궁팀이 전 종목 석권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는데 버팀목 역할을 하며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또 정 회장은 지난해부터 소방관들의 과로와 탈진을 예방하고 심신회복을 돕는 소방관 회복지원버스를 기증해 감동을 줬다.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의 뜻에 따라 소방관들이 실제 필요로 하는 편의 및 집중 휴식 시설을 품은 차량 여덟 대를 전국 소방본부에 기증했고 추가로 보낼 예정이다. 정 회장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매 순간 망설임 없이 사투의 현장으로 뛰어드는 소방관분들께 깊은 존경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수소, 로보틱스,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목적기반 모빌리티(PBV), 미래항공모빌리티(AAM) 등 신사업에 꾸준히 투자하며 미래 비전을 이끌고 있다. 특히 수소 분야는 그가 중점을 두는 분야인데 1월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4'에서 수소 가치사슬 전반에 맞춤형 설루션을 제공하는 'HTWO 그리드' 비전을 발표했다.
세계적 권위의 미국 자동차 전문매체 오토모티브뉴스는 지난해 말 정의선 회장을 오토모티브뉴스 올스타 38인 중 최고 영예인 '자동차 산업 올해의 리더'로 선정하면서 "정 회장의 리더십 아래 글로벌 톱3 자동차 기업인 현대차그룹은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와 PBV뿐 아니라 전기차 및 수소 에너지 분야 등에서도 위상을 강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정 회장은 수소를 비롯한 미래 신사업에서 수익성을 확보하고 지속 가능성을 증명해야 한다는 과제가 눈앞에 놓여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대선, 중동 전쟁 등 급변하는 글로벌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비하며 성장을 지속해야 하는 것이 정 회장이 직면한 시급한 과제"라며 "최근 전기차 화재에 대한 우려가 높은 만큼 배터리 안전 기술 등 전동화 경쟁력을 키워 전기차 캐즘 이후 중국 전기차 등과 치열한 경쟁 상황 속에서도 확실한 퍼스트 무버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정 회장의 과제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