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장소 된 한강의 서촌 책방.."오늘은 일찍 마감하겠습니다"

입력
2024.10.11 20:30
한강 운영 서점 '책방오늘' 앞 줄 길게 늘어서
시민과 취재진 몰려들어 일찍 마감
흑백요리사 '도량' 이어...'축복받은 골목'

"너무 많은 분들이 오셔서 오늘은 일찍 마감하겠습니다."

서울 종로구 통의동의 작은 독립서점이 평소 마감 시간보다 4시간 일찍 문을 닫았다. 한국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한강과 그의 아들이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책방오늘'이다. 동네 주민과 단골손님들만 영수증에 찍힌 사업자명 등을 보고 암암리에 알았던 사실인데, 10일 수상자 선정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입소문을 탔다. 좁은 서촌 골목은 이른 아침부터 시민과 취재진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책방이 '성지순례' 장소가 된 것.

책방 앞 러닝화 가게인 '온유어마크' 관계자는 인파를 보고 놀라워했다. "아침에 사람들이 몰려 있길래 사실 우리 신발 때문인 줄 알았다"며 "오늘 우리 가게에 행사가 예정돼 있었는데 위험할까 봐 급하게 취소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골목 상권이 더 살아나 혜택을 입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다. 그는 이 골목을 '축복받은 골목'이라고 불렀다. 책방에서 도보 2분 거리에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임태훈 셰프의 중국집 '도량'이 있는데, 역시 사람을 끌어모으고 있어서다.

혼잡함 때문에 책방오늘은 원래 마감시간인 오후 7시가 되기 전에 문을 닫았다. 한강의 수상 소식을 듣고 찾아온 손님들은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서촌 주민인 차영미씨는 "한강의 책을 사려고 했는데, 어제 교보문고 사이트가 마비되고 책들이 다 품절돼서 살 수가 없었다. 동네책방에 오면 살 수 있을까 했는데 실패했다"며 "살 수 있으면 시집이고 소설이고, 싹 다 사려고 했는데 입장 마감이라고 해서 못 샀다"고 말했다.

"한강이 큐레이션한 서가 보고 싶었는데...아쉽다"

이해진(23)씨는 "한강 작가가 직접 큐레이팅한 책들을 보면 작가의 식견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왔다"며 "못 들어간다고 해서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이상은(23)씨는 "실망했지만 나중에 다시 와야겠다"고 말하며 발길을 돌렸다.

단골손님들은 불만과 걱정을 표하기도 했다. 단골이라는 한 여성은 책방을 나서며 "사람이 많아서 화가 난다"고 말했다. 굳게 닫혔던 서점 문이 잠깐 열리기도 했는데, 단골손님 김민경(27)씨를 알아본 서점지기가 양해의 말을 전하려고 나왔을 때다. 김씨는 오늘에서야 한강이 책방 주인이라는 걸 알았다며 "(책방에 오고 싶으면) 앞으로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민지 인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