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파트너'라더니… 바이든 2년 연속 불참에 커지는 '아세안 패싱' 불만

입력
2024.10.11 16:25
블링컨 국무장관 대리 참석에 실망감 확산
"아세안, 미국 지정학적 계산에서 밀려나"
백악관 "아세안과 유대를 강화 노력" 해명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의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년 연속 불참하면서 지역 내 실망이 커지고 있다. 그간 동남아를 주요 협력 파트너로 띄워왔던 미국이 정작 최대 외교 행사에는 나타나지 않으면서 아세안을 경시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 목소리가 잇따른다.

미 대통령·부통령 불참에 ‘실망’

11일 싱가포르 CNA방송 등에 따르면 이날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린 미국·아세안 정상회의와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는 미국을 대표해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참석했다. 블링컨 장관은 동남아 각국 정상들과 미얀마 사태, 남중국해에서의 국제법 준수 등 지정학적 현안을 논의했다.

현지에서는 미국 정상급 인사가 아닌 수석 국무위원의 대리 참석을 두고 아쉽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아세안 정상회의는 동남아 의사결정권자들이 모이는 역내 가장 큰 행사다. 2008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회의 참석 이후 미국 대통령의 아세안 의장국 방문은 국제 무대에서 동남아 몸값이 높아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에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대신 보냈다. 공교롭게도 그는 비슷한 시기 인도와 베트남을 직접 찾았다. 이후 바이든 행정부가 필요한 동맹만 콕 찍어 관계를 강화하는 ‘체리피킹(취사선택)’ 외교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올해는 그보다도 ‘급’이 낮은 국무장관이 자리를 대신하게 됐다. 바이든 대통령과 해리스 부통령 불참은 한 달도 남지 않은 미국 대통령 선거(11월 5일)에 집중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아세안 국가들은 실망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산 탓에 화상으로 열렸던 2021년 회의에서 “아세안은 역내 안보와 번영에 있어 탄성을 유지하는 핵심 축”이라고 강조했다. 이듬해에는 미국-아세안 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했다. 외교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너라고 선언한 것인데, 정작 정상회의 참석은 2년 연속 ‘패싱’한 셈이다.

미국 “액션플랜 98% 달성” 반박

이 때문에 동남아가 미국의 외교 정책 순위에서 크게 밀렸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인도네시아 베나르뉴스는 10일 “미국의 외교적 무시는 아세안과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헌신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행보가 장기적으로는 미국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역내 영향력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싱가포르 싱크탱크 ISEAS-유소프 이샤크 연구소의 조앤 린 아세안 연구센터 연구원은 “아세안이 미국 지정학적 계산에서 점차 뒷전으로 밀려나는 추세를 반영한다”며 “아세안에서 (미국의) 공백을 중국이 재빨리 메우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이어지자 미국은 해명에 나섰다. 백악관은 10일 보도 참고자료인 ‘팩트 시트’를 통해 “바이든 행정부는 아세안과 유대를 강화하고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강조했다. 양측이 다방면에서 협력을 심화하면서 과거 합의한 아세안·미국 행동계획(액션플랜·2022~2025년)의 98.37%를 달성하는 성과를 냈다고도 했다.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도 브리핑을 열고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지 않는다고 아세안 지역에 대한 미국의 헌신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며 “대통령은 아세안이 미국 인도·태평양 전략의 심장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왔다”고 반박했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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