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5·18, 제주 4·3 다룬 한강 소설의 '무엇이' 세계를 사로잡았나

입력
2024.10.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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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군사독재, 민주화운동...파란만장 근현대사
국가폭력 의한 '한국적 상처' 주목

한강(53) 작가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한 스웨덴 한림원은 그의 문학 세계가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면한 점"을 강조했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2014)에서 광주 5· 18 민주화운동의 아픔을, '작별하지 않는다'(2021)에서 제주 4·3 사건의 상처를 다뤘다. 그의 소설엔 남북 분단, 군사독재, 민주화운동 등 파란만장한 한국 근·현대사가 흐른다. 한강의 수상은 국가폭력에 의한 한국적 상처를 한강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다룬 작품들이 세계문학계를 사로잡은 결과다.


"해결되지 않은 과거사 문제의 그늘" 세계와 공명

한강은 국가 폭력의 무자비함을 직설적으로 묘사하기보다 피해를 입고도 제대로 소리 내지 못해 잊혀 가는 개인의 좌절과 한에 주목했다. 그 진혼(鎭魂)은 세계에서 '치유의 서사'로 받아들여졌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난민 문제로 국제사회의 현안이 된 '국가 윤리'를 소설로 환기한 점도 관심을 집중시켰다.

우미영 한양대 인문과학대 교수는 11일 "2001년 미국 9·11 테러와 중동 전쟁 등을 통해 드러난 '해결되지 않은 과거사 문제'는 세계 문단의 화두로 떠올랐다"며 "한강이 광주 민주화운동 등을 다룬 소설들로 '우리 사회는 아무것도 변한 게 없구나'라고 던진 메시지가 세계적 상황과 맞물려 힘을 얻었다"고 봤다.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난 한강은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이 보여준 광주민주화 운동에서 학살된 시민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 경험이 그가 근현대사의 상처를 끈질기게 마주한 배경으로 전해진다. 함돈균 문학평론가는 "역사적 폭거에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공동체에서 자기 목소리를 갖지 못하고, 그들의 세계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다"며 "한강은 그런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애도해 보편성을 띠었고, 한림원은 바로 이 점에 주목했다고 본다"고 평했다.



대하 역사·저항 소설과 다른 한강의 이야기

한강은 국가 폭력이 개인의 내면을 어떻게 황폐하게 만드는지를 섬세하게 포착했다. 그가 소설에서 초점을 맞추는 대상은 '무너지는 연약한 인간'이다. 기존 '저항 소설'과 한강 작품이 가장 차별화되는 지점이 바로 이 대목이다. 한림원이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한강의 문체를 주목한 배경이기도 하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에서 광주 민주화운동 현장 속 인물의 심리를 "차가운 몽둥이 같은 게 갑자기 내 옆구리를 내려치기 전까지. 아스팔트가 산산이 부서질 것 같던 발소리들. 옆구리에서 솟구친 피가 따뜻하게 어깨로, 목덜미로 번질 때까지. 그때까지 네가 함께 있었는데"라고 표현했다. 김하라 연세대 국문과 교수는 "한강은 역사적 피해자를 대신해 목소리를 내는 방식으로 소설을 썼고 그 사람들의 아픔을 되살리는 게 여느 대하 역사 소설과 다른 한강의 문학적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소설 '수상한 식모들'을 쓴 박진규 작가는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는 르포 같은 전개가 아니고 시적인 문장들로 이야기가 펼쳐져 읽다 보면 심금이 울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했다.



양승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