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만원 카드' 던진 고려아연 ①2조6,000억 원 차입금 ②사법 리스크도 견딜까

입력
2024.10.1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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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K 측 "83만 원서 추가 인상 없다" 공언
영풍정밀 공개매수가도 5,000원 격차
자사주 매수 투입 자금 3조2,245억 원
"배임" 가처분 신청 등 발목 가능성도


고려아연을 둘러싸고 영풍·사모펀드 MBK파트너스(MBK)와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고려아연 현 경영진이 자사주 공개매수가를 기존 83만 원에서 89만 원으로 올렸다. 경쟁 상대인 MBK 측이 공개매수가 83만 원에서 더 이상 올리지 않기로 하면서 이날 고려아연의 인상이 사실상 최후의 카드를 꺼낸 것이다. 무려 6만 원 차이로 벌리며 싸움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승자의 저주 논란, MBK·영풍의 법적 문제 제기로 인한 공개매수 자체의 무산 가능성 등이 남아 있다.

고려아연은 11일 서울 종로구 본사에서 이사회를 열어 이 같은 안을 의결한 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자기주식 취득 결정 정정신고를 공시했다. 자사주 매입 수량도 기존 전체 발행 주식의 약 15.5%에서 약 17.5%로 확대했다. 매수 주식 수를 320만9,009주에서 362만3,075주로 늘린 것이다.

이로써 양측의 지분 경쟁에서 최윤범 회장 등 고려아연 현 경영진이 유리해 보인다. 9월 초 53만 원이었던 고려아연 주가는 지분 확보 경쟁 속에 8일 77만 원이 됐다. MBK 측과 고려아연 모두 고려아연 공개 매수가를 83만 원으로 올린 상황에서 9일 MBK 측은 "추가 가격 경쟁으로 고려아연과 영풍정밀의 기업 가치가 훼손되는 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다"며 공개 매수가 추가 인상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고려아연 지분 1.85%를 쥔 이번 지분 경쟁의 '캐스팅 보터' 영풍정밀의 공개 매수가 격차도 벌어졌다. 고려아연 측 특수목적법인(SPC) 제리코파트너스는 이날 영풍정밀 공개 매수 가격을 기존 3만 원에서 3만5,000원으로 인상했다. MBK 측은 9일 영풍정밀 공개 매수가(3만 원)도 더 이상 올리지 않겠다고 밝혔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자사주 매수자금... 2차 가처분 신청 등 발목


하지만 이로 인한 회사의 부실화 등 승자의 저주 우려가 더 커진 상황이 고려아연 측에는 계속 부담이 될 전망이다. 이날 조치로 고려아연이 자사주 매수에 투입하는 자금 규모는 기존 약 2조6,635억 원에서 약 3조2,245억 원으로 커졌다. 고려아연은 이 가운데 2조6,545억 원을 차입금으로 마련할 예정이다. 자기자금은 5,700억 원이다. 8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고려아연 공개매수에 불공정거래 조사 착수를 지시하며 우려를 표했다. 그는 "장기적 기업 가치를 도외시한 지나친 공개매수 가격 경쟁은 종국적으로 주주가치 훼손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아울러 사법 리스크가 고려아연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남아 있다. MBK 측은 이날 고려아연의 조치를 놓고 "고려아연 재무 구조에 부담을 줘 기업·주주 가치를 떨어뜨리고 글로벌 경쟁력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고려아연에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부정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반발했다. 이어 "대규모 차입 방식의 자기주식 공개 매수로 돌이킬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진행 중인 소송 절차를 통한 구제를 포함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강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MBK 측은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이 배임에 해당한다며 공개 매수 절차 중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1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첫 재판(심문기일)이 열릴 예정이다. MBK 측은 고려아연의 경영권 확보를 위한 공개매수 기간(9월 13일~10월 4일) 동안 특별 관계자인 고려아연이 자사주를 취득할 수 없도록 해 달라는 취지의 가처분 신청도 했었지만 기각됐다.

고려아연 측은 "자사주 공개매수로 단기적으로 일부 금융 부담 늘어날 수 있지만 그간의 현금창출력을 고려하면 6년 내에 부채비율을 20%대로 회복해 재무건전성을 빠르게 개선할 것으로 자신한다"며 "MBK와 영풍이 다시 신청한 가처분의 경우 이미 법원에서 모두 기각한 건과 사실상 다를 게 없어 불확실성이 있을 것이라고는 판단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청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