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지배에 정면으로 맞서며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다.' 10일(현지시간) 스웨덴 한림원은 소설가 한강(53)을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광주 출신 한강은 광주 5·18 민주화 운동과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한 '소년이 온다'(2014년), '작별하지 않는다'(2021년)를 각각 펴냈다. 아픈 역사를 직시한 작품들의 배경이 된 광주와 제주에서는 한강의 노벨상 수상에 찬사가 쏟아졌다.
어두운 역사를 예술로 풀어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아서일까. 동료 예술가들은 '경이롭다'는 반응이다. 이지현 5·18부상자동지회 초대회장은 뮤지컬 '애꾸눈 광대'를 수백 차례 공연해 온 공연 예술가다. 이 초대회장은 1980년 5·18 당시 주검을 수습하다가 계엄군이 휘두른 총기 개머리판에 맞고 끌려가 고문당했다. 그때 한쪽 눈을 잃었다. 자전적 이야기가 뮤지컬의 주재료가 된 것이다. 이 초대회장은 "(한강 수상) 소식을 듣고 한 시간쯤 멍했다"면서 "너무 아파서 진실을 차마 마주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예술이란 게 바로 이런 의미 아니겠나"라고 감격했다.
허영선 전 제주 4·3 연구소장은 "한강의 소설은 그 자체로 거대한 애도"라고 평했다. 시인 출신인 허 전 소장은 10년 전 제주 4·3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엮은 책('제주 4·3을 묻는 너에게')을 썼다. "제주의 아름다움 이면엔 어두운 역사가 있고 지금도 그걸 기억하는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이라고 운을 뗀 그는 "이분들을 애도해준 한강의 서사가 전 세계인의 가슴을 울렸다는 점이 정말 큰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유족들과 시민 단체도 박수를 보냈다. 오임종 전 제주 4·3 유족회장은 1994년 노벨문학상을 탄 '행동하는 일본의 양심' 고(故) 오에 겐자부로를 떠올렸다고 한다. 전후(戰後) 문학의 대가인 그 역시 일본이라는 국가의 폭력성을 치열하게 고민한 작가였기 때문이다. 오 전 회장은 "대한민국의 아픔을 치유하는 노벨상 수상 작가가 나왔다니 정말 기쁜 일"이라고 기뻐했다. 박강배 5·18 기념재단 상임이사는 "그간 우리를 포함한 수많은 단체나 기관이 5·18을 알리려고 노력했는데 그런 수십 년 활동보다도 한 권의 소설, 한 명의 작가가 더 뜻깊은 일을 멋지게 해냈다"면서 "'문학의 힘이 이런 거구나'라고 느꼈다"는 소감을 전했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한강을 통해 우리의 아픈 역사가 더 널리 퍼져나가길 희망한다고 입을 모았다. 전남대 5·18 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민병로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내나 전 세계적으로나 5·18에 대해서 더 관심을 갖게 되는 하나의 커다란 '사건'이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오 전 회장 역시 "세계인들이 한강의 작품을 통해 인간 존엄성이나 평화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됐을 것"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