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 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와 존 홉필드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의 수상 소감에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인공지능(AI)이 두렵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사람의 뇌 구조를 기계적으로 흉내 내 AI 개발의 모태가 된 인공신경망 연구로 노벨상을 받았다. 어찌 보면 AI 개발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AI가 사람의 지능을 넘어설 수 있다"며 공상과학(SF) 영화처럼 AI가 통제하는 세상을 걱정했다.
그런데 아직은 AI가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분야가 있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 흔히 말하는 소프트 터치다. 우리말로 바꾸면 감성적 접근에 해당한다. 디지털 기기나 소프트웨어, 서비스 등을 만들 때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반영하는 것이다. 따로 공부하지 않고 보기만 해도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인데 이렇게 하려면 인류의 오랜 습관과 문화, 감성 등을 이해해야 한다. 손가락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꾹 누르면 힘의 강도와 시간을 반영해 특정 기능이 실행되도록 하는 햅틱 기능이 대표적이다.
요즘 IT업체는 AI와 차별화를 위해 소프트 터치를 고객 서비스에 반영하고 있다. 주로 고객상담 등에 소프트 터치를 활용한다. 원래 고객 상담은 대화형 로봇(챗봇)을 활용해 인건비를 줄이는 등 디지털 전환이 빠르게 일어나는 분야다. 그런데 소프트 터치를 활용하는 기업은 문자 상담 등 디지털 방식을 활용하더라도 기계적 반응이 아닌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대응하는 것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고객 상담이 몰려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 짜증 나지 않도록 할인 쿠폰을 제공하거나 해당 고객이 궁금할 만한 정보를 헤아려 미리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식이다.
인터넷으로 자동차를 빌려주는 리스와 렌트 서비스 '차즘'을 개발한 신생기업(스타트업) 디자인앤프랙티스는 소프트 터치를 고객 상담 서비스에 활용하면서 일부러 AI 서비스가 아니라고 표시한다. 이용자들의 문의가 몰릴 때면 창업자인 정상연 대표도 밤 늦도록 문자를 이용한 고객 상담을 직접 하며 오랜 시간 기다린 이용자가 짜증 나지 않도록 배려한다. 은행에서 수년간 일했던 정 대표는 은행 지점에 사람이 몰려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 요구르트를 사서 돌리며 누구보다 소프트 터치의 중요성을 잘 알았다.
소프트 터치는 지성이 아닌 감성의 영역이다. 감성은 AI가 흉내 낼 수 있어도 제한적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AI 서비스는 이용자의 질문, 즉 프롬프트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이용자가 던지는 질문에 반응하는 식이어서 이용자의 상태를, 질문을 던질 때 계속 알려줘야 한다. '지금 내가 우울하니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음악을 알려줘'라는 식으로 질문해야 한다. AI와 사랑에 빠지는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그녀'처럼 침묵이나 말투, 표정까지 관찰해 미리 말을 거는 AI는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은 합리적 소비만 하지 않고 감성적 선택도 중요하게 여긴다. 이를 잘 아는 기업들이 AI 못지않게 소프트 터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다. 앞으로 감성까지 따라 하는 AI가 나올지 알 수 없지만 아직까지는 AI가 지능지수(IQ)로 사람을 앞설 수 있어도 감성지수(EQ)에서 뒤처지는 만큼 소프트 터치의 도입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