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을 거머쥔 한강(53) 작가가 2007년 써낸 장편소설 '채식주의자'가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2016년이다. 그해 이 책은 영국의 유명 문학상인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선정한 ‘2016년 최고의 책 10권’에 이름을 올렸다.
NYT는 당시 '채식주의자' 영문판('The Vegetarian')을 소개하며 "평범해 보이는 주부가 악몽을 꾸고서 채식주의자가 되는 이야기로 주부의 자기희생은 갈수록 가혹하고 비현실적으로 변한다”고 적었다. 이어 번역에 대해서도 "품격 있는 번역이 한국어 원문을 날카롭고 생생한 영문으로 바꿨으며, 잔인한 세상에서 진정한 결백이 가능한지를 들여다본 한강의 예리한 탐구를 그대로 유지했다"고 호평했다. 한국 소설가 한강과 '채식주의자'는 물론이고 20대 영국인 초보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가 주목받기 시작한 순간이다.
데버라 스미스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이어 런던대 SOAS 한국문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2014년 당시 26세의 젊은 번역가였다. 처음엔 한국이나 한국 문학에 대해 전혀 모르는 채로 한국 작품 번역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내가 책을 읽어본 적이 없는 나라 중에서도 한국이 상대적으로 부유한 선진국인 것으로 보아 문학계가 활발할 것으로 짐작했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박사과정 2년째에 들어서야 더듬더듬 한국 소설을 읽을 수 있게 됐다는 스미스는 2014년 영국 런던 도서전을 계기로 번역 전문가로 자리를 잡았다. 한국이 당시 행사의 주빈국으로 지정되면서 관계자들이 영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문학 번역자를 급히 수소문했는데, 마침 바로 직전 해에 그가 ‘채식주의자’ 번역 샘플을 현지 출판사에 보냈던 일이 알려져 출간이 성사됐던 것이다.
한강 역시 그의 번역에 신뢰감을 드러냈다. 맨부커상 수상 직후 한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번역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저는 소설에서 톤, 목소리를 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데버라씨의 번역도 톤을 가장 중시하는 번역"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악몽을 이탤릭체로 독백하는 부분의 느낌을 제 감정, 그 톤 그대로 번역하셨다고 느꼈고 마음이 통했다고 느꼈다"며 "굉장히 신뢰를 갖게 되었다"고 했다.
또 한강 본인이 영국 번역 워크숍에 참석했던 일을 언급하며 "그때 느낀 게 번역이란 건 굉장히 흥미로운 작업이라는 점"이라며 "그런 언어의 섬세함, 예민함에 항상 매료가 되고 앞으로 많은 한국 문학 작품이 좋은 번역을 통해 계속 소개될 거라 믿는다"고 희망했다.
이후 스미스가 문단 일각의 비판 속에 오역 논란에 시달리자 한강 작가는 재차 "역자가 한국어가 서툴러 몇몇 실수를 했지만, 작품을 전달하는 데 결정적인 장애물이 된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