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시진핑 중국 주석의 방한이 유력한 가운데, 최근 외교가 안팎에서 정재호 주중대사의 뒤를 이을 인사로 부쩍 거론되고 있는 인물들입니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의 국토교통, 외교, 경제안보를 책임졌던 소위 '거물들'이죠. 용산과 외교부에서 구체적인 평판 조회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 아닌데도 이들이 차기 주중대사 후보군으로 급부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중국 전문가들은 그 배경으로 주한중국대사 자리가 현재 공석이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외교 결례' 논란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싱하이밍 대사가 올 7월 귀임했죠. 그러나 그의 후임 자리는 여전히 비어있습니다. 팡쿤 주한중국대사관 공사가 대사대리를 맡고 있지만, 중요 결정을 내리기엔 권한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게 외교가 안팎의 설명이죠.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왕이 중국 외교부장에게 "비중 있는 인사를 보냈으면 좋겠다"고 했다지만 여전히 후임은 오리무중인 상태입니다.
이게 우리 주중대사와는 무슨 상관일까요. 이해하려면 싱 대사의 귀임 당시 분위기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싱하이밍 대사는 지난해 6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만찬자리에서 한 모두발언으로 윤석열 정부의 사실상 '기피인물'로 전락했죠. 마찬가지로 우리 측 정 대사는 한미동맹 우선중시 성향으로 인해 중국 정치인이나 고위 측 인사들과 접촉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싱 대사가 귀임했을 때, 정 대사도 자진 사퇴하는 형식으로 자연스럽게 교체되지 않겠냐는 관측까지 나왔습니다. 당시 중국 측에서 정 대사의 후임에 대한 평판조회를 했다는 얘기는 교체설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죠. 최근 중국을 다녀온 한 전문가는 "차기 주중대사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고 중국도 후임 주한대사를 결정하지 않겠느냐"고 현지 기류를 전했습니다. 우리가 주중대사 후임을 정하는 것에 맞춰 중국이 주한대사 카드를 꺼낼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그동안 정 대사의 후임으로 꾸준히 언급된 인물은 한석희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이었습니다. 중국 베이징대학교 정부관리학원 강의교수, 박근혜 정부의 중국특사 및 상하이 주재 총영사를 지낸 그는 학계에서 유명한 '중국통'입니다. 윤석열 정부의 '한중 1.5트랙(반민반관) 대화'를 주도해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정계 인사들이 대거 주중대사 후보로 언급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내년 11월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맞물려 있습니다. 정부는 APEC에 맞춰 시 주석 방한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시 주석이 과거 APEC 정상회의에 불참한 적이 없는 터라 오히려 안 오면 이상한 상황입니다. 다만 지난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막판까지 시 주석이 참석 여부를 두고 미국과 '밀당(밀고 당기기)'을 벌인 것을 고려하면 한국에도 같은 전략을 고수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 과정에서 한중관계를 부드럽게 끌고 갈 대사의 역할이 아무래도 중요한데요. 그래서 정치인 또는 정책인사인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과 박진 전 외교장관, 왕윤종 현 국가안보실 3차장 등이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중화인민공화국 75주년 기념 리셉션' 행사에 외교부 차관보가 아닌 김홍균 외교부 1차관이 참석한 것과 같은 맥락인 셈이죠. 해당 행사에 그동안 한국과 중국은 각각 차관보급 인사를 참석시켜오다 올해 이례적으로 급을 한 단계 격상시켰습니다.
인물들의 면면을 봐도 그렇습니다. 중국 베이징대학교에서 6개월간 방문학자를 지낸 원 전 장관은 중국어에 능통합니다. 제주도지사 시절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어로 인사를 건네거나 중국 지자체 행사에 중국어로 축사를 하는 등 중국에 우호적인 메시지를 여러 차례 낸 것으로 유명하죠. 중국에서도 원 전 장관은 '한국 정계에서 손꼽히는 중국통'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박 전 장관은 뛰어난 언어감각과 친화력으로 유명합니다. 2022년 8월 칭다오로 건너가 윤석열 정부의 대중외교 첫걸음을 떼는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부터 2023년 11월 한중일 외교장관회담까지 양자관계를 관리하는 선봉장에 섰죠. 그는 산동대학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중국어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2022년 왕 부장과 화상통화를 할 때 중국어로 인사를 건네기도 했습니다. 당시 박 전 장관은 왕 부장이 "중국어를 어디서 배웠냐"며 놀라워했다고 소개했죠.
왕 3차장은 중국 전문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SK경제연구소장을 거쳐 SK중국경제연구소장과 현대중국학회장을 역임한 '중국통'으로 꼽히죠. 미중 기술패권경쟁과 공급망 위협 속에서 왕 차장이 한중 경제관계를 원만하게 이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스멀스멀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관측은 아직까지 하마평에 그치는 상황입니다. 거론된 당사자들에게 의견 문의나 인사 검증 절차가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올 하반기 공관장 인사를 앞두고 현재 공석인 공관장직에 대한 인사 절차가 이미 진행되고 있는 상황인데 말이죠. 이 때문에 본격적인 차기 주중대사 물색 작업은 내달 페루에서의 APEC 정상회의 계기 한중 정상회의 이후, 내년 상반기를 염두에 두고 진행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습니다.
'물오른' 한중관계의 바통은 누가 이어갈까요? 지난 6월 한중 차관급 외교안보대화(2+2)에서부터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계기 한중외교장관회담, 중국 지방정부 핵심 인사들의 방한까지 한국과 중국이 서로의 관계를 관리하며 배려하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결과를 알 수 없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있고, 이전에도 국제정세의 다이내믹한 변화에 따라 한중관계가 180도 달라진 경험을 수차례 해왔습니다. 누가 주중대사로 오든 안정적인 한중관계로 한국 외교의 불안정성을 낮추고 기회를 엿보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