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에서 1년 2개월가량 새벽 배송을 하다 심근경색 의증으로 숨진 고(故) 정슬기씨에 대한 산업재해가 인정됐다. 고인은 사고 발생 직전 한 달간 주 평균 78시간을 일했다.
10일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에 따르면 근로복지공단은 이날 정씨의 유족과 담당 노무사에게 문자메시지로 고인의 산재 요양 신청이 승인됐다고 알렸다.
앞서 대책위와 유족은 지난 7월 31일 정씨의 과로사를 주장하며 산재를 신청했다. 네 자녀를 둔 가장 정씨는 올해 5월 28일 오후 출근을 앞두고 경기 남양주시 자택에서 심실세동과 심근경색 의증으로 쓰러져 병원에 이송됐으나 결국 사망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정씨는 생전에 주 6일을 오후 8시 30분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일했다. 자택 폐쇄회로(CC)TV 분석 결과 사고 발생 전 4주 평균 78시간 26분, 12주 평균 74시간 39분 일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고용노동부 심혈관질병 인정 기준에 따라 '야간 근무(오후 10시~오전 6시) 시 30% 가산'을 적용했을 때의 수치다.
대책위와 유족 측은 전날 밤 11시 59분에 주문해도 다음 날 오전 7시 전까지 무조건 배송을 완료해야 하는 쿠팡의 '새벽 배송' 시스템이 과로 유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김종진 노무사는 "고인은 매일 오전 7시 업무를 마칠 수 있을지에 대한 중압감에 시달렸고, 평균 260개에 달하는 기프트(물품)를 뛰어다니며 배송해야 했다"며 "다른 배송기사가 시간 내 완료를 못 할 것 같다는 이유로 (원청이) 지원을 요구할 때도 응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정씨는 원청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소속 직원이 배송을 독촉하자 "개처럼 뛰는 중"이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쿠팡은 정씨 사건에 대해 "CLS는 배송기사의 업무가 과도하지 않도록 국토교통부 표준계약서에 명시된 주당 작업 일수와 작업 시간에 따라 관리해 줄 것을 전문배송업체(대리점)에 요구한다"고 공식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원청인 쿠팡은 직접 관련이 없다는 취지다. 그러나 대책위와 유족 측은 '배송 시스템' 전체를 규율하는 쿠팡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며 진정성 있는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