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지 않은, 자원봉사 '열정페이'

입력
2024.10.1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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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 하시네요."

휠체어 타는 딸의 지하철 환승이 편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지하철 교통약자 환승지도'를 만들었을 때 이런 얘기를 수없이 들었다. 이 '좋은 일'이 나의 '업'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도 제작이 알려지고 딸의 활동 반경이 늘어나면서 교통수단, 거리, 학교, 공연장 등… 휠체어 눈높이의 어려움이 더 많이 보이게 됐다. 지도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을 모았다. 어느 순간 공공이 해야 할 일을 애 엄마가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래, 언젠가는 공공에 일을 넘겨줘야겠으니 그전까지만 잘 버텨 보자'란 생각을 했다.

몇 년이 지났지만 할 일은 줄지 않고 점점 늘어났다. 지도를 만들면서 휠체어 눈높이로 수집한 불편함을 때로는 공공 앱을 통해 신고하고, 때로는 공공기관에 '개선점이에요'라며 알려줬다. 휠체어를 타고 겪는 미세차별 문제도 해결하고 싶어졌다. 누군가가 말했다. "후원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나요?" 머리를 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좋은 일을 하는 것뿐이었는데, 그 정도로 접근성과 이동권이 큰 사회문제였다니.

후원을 받을 수 있는 사단법인, 즉 NGO로 전환하기로 했다. 평생 영리기업에서 일했던 나에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을 할 테니 후원해 주세요"라고 스스로 직접 입을 떼기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던 중 사단법인의 잠재 후원자들을 모신 행사를 지난 5일 열었다. 여기서 20년 넘는 경력의 베테랑 활동가분께 조언을 구했다. 장애인콜택시, 저상버스, BF인증 도입 등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이 활동가는 앞으로의 무의 활동에 대한 조언을 해주시는 한편 뜻밖의 말씀을 해 주셨다. "가늘고 길게 가야 해요. 많은 조직이 활동가를 구하지 못해 활동을 중단해요." 그분은 청중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기 있는 활동가들이 지치지 않아야 합니다."

NGO의 세상으로 깊숙이 들어올수록 사회문제 해결 솔루션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이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어떤 시민들은 '내가 전하는 기부금이나 후원금은 전액 '수혜자'에게 가야 한다'고 믿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예를 들어 이재민들에게 구호품을 전달하려면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이 필요하다. 자원봉사로만 때우기에 이런 일들의 복잡성과 전문성은 생각보다 높다. 한편 NGO가 되면 법적, 회계적 부담이 커진다. 전문 인력이 더 필요하다는 말이다. 반면 한국 공익활동가 연봉은 여러 통계를 두루 살펴봐도 평균 2,000만 원대에 불과하다. NGO를 만든다는 것은 나를 말렸던 어떤 전직 NGO 대표의 말처럼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떤 개인투자자가 한 모임에서 내게 물었다. "그냥 NGO를 하지 않고 돈을 벌어서 딸에게 금전적으로 더 좋은 미래를 만들어 주는 게 낫다는 생각은 혹시 하지 않으세요?" 왜 안 하겠는가. 하지만 "지도를 보고 혼자 출퇴근할 수 있게 됐어요"란 휠체어 이용 청년의 마음이 지금의 나를 움직이고 있듯, 전국의 수많은 NGO 활동가들의 오늘을 움직이는 것도 그런 내적 동기일 것이다.

그러나 "좋은 일 하는" 사람들이 그 일을 자원봉사 하듯, 무급 또는 열정페이를 받으며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사회문제를 전문적으로 고민하는 활동가들에 대한 응원을 실제 후원으로 전환할 수 있는 시민이 더 늘어나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홍윤희 장애인이동권증진 콘텐츠제작 협동조합 '무의'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