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지의 대사관을 찾아가 진행하는 재외공관 대상 국회 국정감사가 의원들의 '외유'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수치로 확인됐다. 정부의 외교활동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매년 수억 원의 혈세를 투입하지만 고작 3시간도 안 돼 국감이 끝나면서 국회의 직무유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일보가 10일 지난 21대 국회 4년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국감 회의록을 전수조사한 결과, 해외에서 진행된 국감의 평균 소요시간은 2시간 37분에 불과했다. 총 39회(코로나19로 국내에서 진행된 2020, 2021년 일부 국감 제외)의 재외공관 국감 가운데 30회(77%)가 3시간도 안 돼 끝났다. 국감이 통상 오전 10시에 시작되는 점에 비춰 점심시간 전에 모두 끝낸 셈이다. 국내에서 치러지는 국감에 비하면 시간이 현격히 짧다. 국회 상임위 국감은 오전 10시에 주질의를 시작해 수차례 추가 질의를 거쳐 12시간을 넘기는 경우가 다반사다.
재외공관 국감 가운데 최단시간은 지난해 10월 17일 주파나마대사관에서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감이 고작 1시간 18분간 치러졌다. 파나마는 한국에서 이동하는 데만 하루가 걸리는 먼 곳이다. 왜 굳이 그렇게 먼 곳을 찾아가 서둘러 국감을 끝냈는지 의문이다. 가장 길게 진행된 국감은 2022년 10월 12일 주미대사관에서 진행된 국감으로, 5시간 41분이 걸렸다. 다만 점심시간 2시간이 포함된 점을 감안하면 3시간 41분가량에 그친 셈이다. 한미동맹을 강조하고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맞서 미국의 중요성이 커지는데도 의원들은 1년에 한 번뿐인 연례행사에 4시간도 투자하지 않은 것이다.
국감 질의응답을 살펴봤더니 더 문제가 많았다. K팝을 비롯한 뻔한 질문 외에 황당한 내용이 적지 않았다. 지난해 주파나마대사관 국감 당시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대사님 비서가 행정직원 아니냐. 기본 급여가 정확히 얼마냐"고 물었다. 이에 정진규 대사는 "2,000불이 조금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자 태 전 의원은 "대사님은 이 정도 갖고 이 친구가 이직하지 않을까 이런 걱정이 없느냐"고 물었다. 대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사안에 대해 트집을 잡은 셈이다.
다른 의원은 "사적인 자리에서의 친밀감이 중요하다"며 대사에게 "주량은 얼마나 되느냐"고 묻기도 했다. 한 외통위 관계자는 "수억 원을 들여 해외에 나가서 할 질문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재외공관 국감은 전 세계를 상대로 보통 3, 4개 반이 편성된다. 22대 국회 외통위원들은 이날 미주반·구주반·아주반으로 나뉘어 24개 재외공관 감사를 위해 출국했다. 21일까지 각각 4, 5회의 감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또 다른 국회 관계자는 "교민 간담회나 현지 시찰 등을 병행하다 보니, 국감에 신경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올해 외통위 국감을 위해 예산 4억3,000여 만 원이 배정됐다. 한 국회 보좌진은 "외통위 국감은 기사화되는 비중이 낮다 보니 의원들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며 "2020년 코로나19 때처럼 차라리 국내에서 화상으로 국감을 진행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지적했다.